얼마 전, 우리 가족의 믿음직스러운 패밀리카였던 지프 랭글러를 몇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떠나보냈다. 높은 차고로 인해 아내는 혼자서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는 것에 힘겨워했고 프레임 바디의 단단하고 와일드한 승차감 때문에 장거리 여행을 할 때면 뒷좌석에 탄 아이가 심하게 멀미를 하기도 했다. 게다가 점점 불어나는 수리비로 인해 경제적 부담도 커지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 차를 쉽게 처분할 수 없었던 이유는 오랜 시간 나와 가족의 일상에 큰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관련 글 : 나의 자동차 이야기#1 : 10년 넘은 랭글러를 타는 이유)

연식으로 인한 소모품 교환 및 잔고장은 더러 있었지만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던 믿음직한 녀석이 얼마 전 가족 여행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전기 장치의 오류로 주행 중 갑자기 서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폭우가 내리던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문제로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뒷좌석에는 아이도 타고 있었기에 더욱 아찔했던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더 이상 나의 낭만을 위해 가족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결국 처분에 이르게 되었다. 낯선 이가 몰고 가는 랭글러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면서 내 인생에서 존재하지도 않았던 첫사랑과 이별의 경험을 떠올렸다면 누군가는 우스워 보였을까?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처럼 랭글러와 함께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4년 전, 장인어른께 물려받은 이 랭글러는 그동안 우리 가족 일상의 패밀리카로서 많은 일들을 충실하게 수행해 준 차였다. 귀촌을 결심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을 당시 여유로운 적재 공간 덕분에 온갖 자재들과 장비들을 가득 싣고 공사 현장을 매일 같이 오가곤 했다. 당시 나는 건축비를 아끼기 위해 직영으로 시공에 직접 참여했는데 오래된 랭글러에서 풍기는 연륜과 거친 이미지는 외골수였던 현장 근로자들과의 신경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젊은 건축주라고 은근히 무시했던 현장소장은 이른 새벽 현장에 먼저 도착해 차 안에서 쪽잠을 자다 뒷문을 열고 좀비처럼 내리는 나를 보고는 태도를 바꾸곤 했다.

2년 전, 여름에는 차를 배에 싣고 제주도로 캠핑을 다녀오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가족의 첫 캠핑지가 제주도였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텐트 외에는 이렇다 할 캠핑 장비들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집에 있는 집기들까지 모두 털어 빼곡히 채워 넣고 무작정 떠났다. 경기도 여주에서 남쪽 끝 완도까지 5시간, 그리고 배를 타고 도착한 제주도에서 일주일간의 여정은 비행기와 렌터카 일정에 맞춰 빠듯하게 돌아다녔던 그간의 제주도 여행과는 완전히 달랐다. 덜어내야 할 필요 없이 다양한 물건들을 모두 챙길 수 있었던 덕분에 물놀이, 요리, 트래킹 등 많은 것들을 여유롭게 체험할 수 있었고 제주도의 경이로운 자연과 함께한 캠핑은 우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미세먼지 없고 햇살 좋은 날. 자동차 탑을 열고 지붕 대신 푸른 하늘을 머리에 덮고 아내와 딸과 함께 여유롭게 강원도 산길을 달릴 때면 손에 잡힐 듯한 하늘처럼 행복 또한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좋은 곳, 좋은 기억들과 함께 했기 때문인지 가끔은 멀미를 일으키고 타고 내리기 매우 불편한 차였음에도 아이는 아빠 차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차를 처분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문제가 발생한 날에도 아이는 랭글러에게 남다른 애착을 보여주었다. 여행 중 급하게 들른 정비소에서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던 내 옆으로 오더니 리프트에 올려진 차를 쳐다보며 “아빠 차 똥꼬 보인다!”라며 깔깔대고 즐거워하던 아이였다. 차도 자기처럼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며 마치 가족처럼 대하는 아이의 긍정에 스스로의 태도를 반성하기도 했다.

그런 랭글러를 떠나보내며 나는 확신했다. 앞으로 어떤 차를 새로 들이게 될지 모르지만 아무리 좋은 차를 타더라도 이 차가 준 만족감을 대체할 수는 없을 거라고. 이상과 현실의 기로에서 결국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 들여야 했던 가장에게 가끔은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된다며 자신을 믿고 멋진 곳으로 떠나 보라며 속삭이던 차였고, 우리 가족의 소중한 순간에 항상 가까이 있었던 동반자 같은 차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급박하게 변해가는 우리 가족의 상황과 생활 방식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마도 이 랭글러와 같은 차를 다시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많이 아쉽지만 이 차를 마지막으로 비로소 차에 대한 욕구를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한편으론 홀가분하다. 그렇게 난 추구했던 소박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언젠가 나의 딸이 커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네가 어른이 돼서 보는 아빠는 이미 나이 들고 굼뜬 중년의 모습이겠지만 한때는 자연을 사랑하고, 모험을 즐기며, 새로운 경험을 갈망하는 모습도 있었단다. 너는 아마 기억에서 흐려졌겠지만 그런 젊고 활발했던 아빠의 모습을 분명히 기억나게 하는 차가 있었지. 너도 한번 쯤은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가족과 함께 하는 더 큰 행복을 위해 결국은 아빠의 낭만이었던 그 차를 떠나보냈지만 아빠도 언젠가 듬직했던 그 차처럼 엄마와 너를 태우고 멋진 곳을 찾아 어디든 떠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