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견, 엠제이

힘겨운 시기에 입양해 동고동락한 반려견 엠제이.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기록하는 못난 주인의 회고록

이 이야기는 나의 아픈 손가락이자,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견 엠제이에 대한 기록이다. ‘마지막’이라 단정짓는 이유는, 엠제이와 함께한 시간을 통해서 나는 반려견을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엠제이에게 전하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담긴 헌사이자, 나 자신을 향한 반성문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엠제이는 만 13세로, 래브라도 리트리버 견종으로는 초고령에 해당하는 나이이다. 견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엠제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못난 주인을 두고도 큰 병이나 사고 없이 기대 수명을 채우며 살아주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미안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든다.

엠제이와 나의 첫 인연은 2012년에 시작되었다. 그해는 창업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맨몸으로 세상에 뛰어들었던, 개인적으로 가장 혹독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당시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원룸 보증금 천만 원과 한 달치 월급 정도의 퇴직금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던 반려동물 사업에 모든 것을 걸고 인생 최대의 도전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도 않으면서 반려동물 사업을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나는, 반려견 한 마리를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사업에 모든 것을 걸고 있던 나는 반쯤 미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그런 상황에서 반려견을 입양한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키우던 반려견 두 마리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입양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입양이 가능하겠느냐는 문의였다. 나는 이런 제안이 그 시점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반려동물 사업이 성공할 운명이라는 일종의 계시처럼 받아들였다. 깊은 고민도 없이 두 마리 모두 입양하겠다고 성급하게 결정했고, 며칠 뒤 생후 6개월 된 동갑내기 암컷 래브라도 리트리버 ‘엠제이’와 도베르만 ‘엠케이’를 우리의 작업실로 데려왔다.

당시 작업실은 나와 창업 멤버였던 동료 두 명이 함께 오래된 빌라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 빌라는 신도시 개발로 인해 곧 철거될 예정이었고,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이미 퇴거한 상태라 마치 유령 건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덕분에 민원이나 각종 규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고, 대형견 두 마리를 키우기에는 오히려 최적의 공간이 되었다. 우리는 방 하나를 두 녀석의 전용 공간으로 내어주었고, 남자 셋과 반려견 둘의 어수선한 동거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글을 읽은 당신이 만약 반려인이라면, 혀를 끌끌 차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나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정리하자면, 직장을 퇴사한 뒤 앞날조차 불투명한 백수 청년이 곧 철거될 건물에 머물며 대형견 두 마리를 덥석 입양해 온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라도 그때의 나를 향해 비난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당시의 나는 정말 무책임하고 어리석었다.

어찌 됐든, 당시의 내가 아무리 답이 없던 철부지였다 하더라도, 천성이 비정하거나 몰상식하지는 않았기에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1시간 넘게 함께 산책을 했고, 빠듯한 살림에도 사료는 반드시 유기농 등급으로 챙겨 먹였다. 반려견 전용 수영장이나 운동장에도 데려가곤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당시 반려동물 사업을 위해 매입해 둔 재고가 많았기에, 우리의 반려견들은 사료, 영양제, 간식, 장난감 등 물질적인 면에서는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어지간한 반려견 부럽지 않은 환경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와 동료들, 그리고 엠제이와 엠케이—이 다섯은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을 함께 보내고 따뜻한 봄도 함께 맞이했다. 가난하고 힘겨운 나날이었지만, 지금도 추억으로 남아 있을 만큼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창업 6개월 만에 반려동물 사업은 말 그대로 폭삭 망했고, 내 명의의 사업체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회생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작업실이 있던 빌라의 철거 소식까지 들려왔고, 경험도 없이 열정과 패기만으로 의기투합했던 우리는 결국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리트리버 엠제이는 내가, 도베르만 엠케이는 동료가 책임지기로 하며 서로에게 안타까운 이별을 고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도베르만 엠케이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작업실 다섯 멤버의 마지막 사진

작업실을 떠나 원룸으로 주거지를 옮기면서, 열 평 남짓한 공간에서 엠제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엠제이를 넓은 마당이 있는 부모님의 본가에 맡기고, 당분간은 오가며 돌보기로 했다. 그때부터 내 기구한 운명이 나의 반려견의 삶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마음속 깊은 부채의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무 죄 없이 태어난 이 반려견은, 생후 1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고, 그 바뀐 주인조차 불안정한 삶 속에서 주거지를 이리저리 옮겨야 했으니 말이다. 당시 나는 본가에 자주 찾아가 엠제이를 돌보았고, 사료가 떨어질 때마다 빠짐없이 챙겨 보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엠제이는 점점 나보다 어머니를 주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다행히 나는 재기에 성공했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 아이도 갖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젊은 날 나의 성급한 판단으로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린 두 반려견, 엠제이와 엠케이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가슴 한구석에 남아 가끔씩 아리도록 찔렀다. 바쁘다는 핑계로 꽤 오랜만에 본가에 찾아가더라도, 내 차가 보이면 우렁차게 짖으며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드는 엠제이를 볼 때면 그 아픔은 더욱 짙게 느껴졌다.

함께 살 수 없게 된 나의 반려견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던 엠제이의 디자인 아트웍

몇 년 전, 전원주택을 짓고 귀촌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엠제이를 다시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는 나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엠제이와의 사연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고맙게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아이였다. 부모님의 본가에 아이를 데려가 엠제이와 처음 대면시켰을 때, 낮선 얼굴에 긴장한 엠제이는 사납게 짖었고, 그 경험은 아이에게 강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로 인해 아이는 엠제이를 데려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고, 나는 그 계획을 잠정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위한 선택으로 소중한 아이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총 13년이 흘러, 엠제이와 나는 다시 지금 이 시간에 이르게 되었다. 며칠 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밥도 잘 먹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찾아가 보니, 많이 야윈 모습에 기운이 없었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 듯했다. 어느덧 이 친구와의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그 와중에도 나의 기척을 느끼자 힘겹게 몸을 일으켜 집에서 기어나와 함께 산책을 가자는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미안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고, 그저 야윈 몸을 한 번 쓰다듬으며 터져 나오는 감정을 억눌러 삼켜낼 뿐이었다.

나의 청춘을 함께 했던 반려견 엠제이는 이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고 장난기가 많았던 이 친구는,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처럼 많이 야윈 모습일 때나 여전히 천진난만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차라리 원망하거나 싫어하는 티라도 내준다면, 머지않아 보내야 할 내 마음이 조금은 덜 무거웠을지도 모른다는 미련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 얼굴을 보며 불현듯 떠오른 과거의 한 장면이 그 부질없는 감정의 표면을 덮어 버렸다.

인생의 나락에서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던 어느 날이 있었다. 좌절한 채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나에게, 엠제이는 슬그머니 다가와 내 무릎에 머리를 얹고 지금과 다름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날 그녀석이 전한 온기는 모두가 떠나가고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당시의 나에게는 삶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불씨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제와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그 녀석이 떠나는 순간이 올 때, 단잠에 들 듯 행복한 꿈을 꾸며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눈 감는 것이다. 내가 볼 수 있는 그 녀석의 마지막 표정이 바로 그때와 같기를 바라며.

많이 고마웠어 엠제이.

못난 주인이 평생 기억해야할 엠제이의 마지막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길 바란다
Roveworks

Roveworks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1인 사업가이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생각을 전달하는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일 잘하는 일은 아무것도 안하기 입니다.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이전 이야기

AI시대를 살고있는 평범한 창작자의 고찰

다음 이야기

난 이제 여름과 화해했다

Latest from Blog

난 이제 여름과 화해했다

유난히 더위를 잘 타는 탓에 늘 혹독하기만 했던 여름이라는 계절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된 계기에 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