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특히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반복되는 일상이 억울하게 느껴지고 잠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들기 마련이다. 나도 그랬다. 그날 유난히 좋은 날씨는 우리를 계획없이 1박 2일의 강원도 여행길로 이끌었다.
무계획으로 부담 없이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와 아내 모두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일들을 즐기는 편이기 때문이었다. 여행의 목적은 봄과 바다를 온전히 느끼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속초 해수욕장을 내비에 찍고 약 3시간을 달려 바다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광활한 바다가 펼쳐졌다. 고운 모래사장과 시원하게 부는 바닷바람이 무작정 떠난 일정이 여행임을 상기시쳐주었다. 이른 봄이었기에 성수기와는 다른 드문 인적으로 여유로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해변을 거닐다 식사 때를 놓친 우리는 허기를 달래러 속초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온갖 먹거리들과 볼거리로 가득한 속초 중앙시장은 언제부턴가 속초 관광 필수 여행지로 각광 받고 있었다.
그렇게 시장 구경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음 장소를 고민하다 불연듯 어린시절 소풍으로 방문했던 통일 전망대가 떠올랐다. 속초에서 통일전망대가 있는 고성과는 멀지 않았기에 드라이브 겸 해안도로를 경유하며 천천히 고성으로 향했다.
통일 전망대에 도착하자 남방 한계선에 가까워진 것을 실감했다. 통일 전망대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신분증과 출입신고서 작성이 필요했고 안보 교육관에서 약 15분 정도의 영상자료를 필수로 시청해야 한다.
정말 오랫만에 방문한 통일 전망대는 시설은 좀 낙후 되었지만 분단에서 비롯된 다양한 역사 자료와 멀찍이 희미하게 보이는 금강산의 능선은 북쪽이 가까이 있음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통일 전망대 방문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무계획으로 떠난 일정이라 당일치기도 고려했으나 고성까지 와버린 마당에 여행을 하루 일정으로 끝내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급하게 예약한 ‘캔싱턴 설악 호텔’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설악산 조망은 좋았지만 전반적으로 낙후된 시설과 오래된 느낌이 아쉬웠다.
다음날 아침, 강원도 양양에 있는 낙산사를 찾았다. 관동팔경에 속하는 낙산사는 동해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장소라 하여 근처에 왔다면 꼭 한번 들려보면 좋은 곳이다.
통일신라시대 때 지어진 낙산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6.25전쟁, 강원도 산불 등의 국가적 재난으로 많은 유적들이 소실되었다. 그렇게 여러 고초를 겪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곳이기에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절경이 더 아련하게 느껴졌다.
낙산사에서 바라보는 동해 바다는 왜 이곳이 관음팔경에 속하는지 실감하게 해주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닌 마치 바다를 품고 있는 듯한 전망은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들었다.
낙산사 방문을 끝으로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마무리했다. 여러 곳을 방문 하지는 않았지만 코스를 미션 수행하듯 바쁘게 움직이는 여행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로서는 제법 괜찮은 동선이었다. 오히려 짧은 일정으로 방문한 곳에 더 여유롭게 머물지 못한 것이 아쉬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이 다음 여행을 기약할 수 있는 동기가 될 거라 생각하므로 아쉬움을 털어내고 다시 일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