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뉴트로드 체험 안내서

영월군청이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던 '걷는 길 조성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브랜딩 및 인쇄물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복고의 현대식 해석을 통해 제작한 지도의 작업 과정과 결과물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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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ject : Yeongwol Newtroad Guide map Design
  • Category : Branding, Illustration, Print
  • Date : 2023.10.13
  • Client : 영월군청, 사소한 기록소

유사부를 통해 일 의뢰가 들어왔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유사부는 도심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다 뜬금없이 연고도 없던 강원도 영월에 정착한 인물이었다. 그는 특유의 사교성과 매력으로 지역 사회에 빠르게 녹아 들었고, 현재는 지자체가 추진하는 굵직한 사업부터 잡일까지 도맡고 있는 홍반장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의뢰한 ‘영월 걷는 길 조성 프로젝트’는 청령포, 별마로 천문대 등의 관광 명소 위주로만 방문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을 영월의 도심으로 유입시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 영월군청에서 추진하는 사업이었다. 영월 읍내 위주로 테마 거리를 조성하여 주변 상권에 유동 인구를 늘리는 것이 사업의 핵심 과제였다.

영월 상권의 중심이자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터미널 주변의 중앙로

유사부에게 사업 개요를 듣고 나 역시 연고도 없는 지방에 귀촌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꽤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어 일을 맡기로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사전에 기획된 테마 거리를 브랜딩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체험 안내서 인쇄물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내가 영월에 관해 사전에 알고 있던 정보는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나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라는 것 정도 외에는 없었다. 이런 무지함이 오히려 장점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판단한 점은 나의 작업으로 관심을 끌어야 하는 대상이 바로 나와 같은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이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영월의 테마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직접 거리의 정취를 느껴보기로 했다. 치유, 복고, 젊음이라는 3개의 주제로 분류된 경로는 저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이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오래된 것과 새로 들어온 것들이 절묘하게 섞여 있던 거리의 모습이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공중전화박스나 대로 변 한가운데 위치한 빨래터 등 대도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독보적인 복고의 감성이 존재했다. 그렇게 몇 번의 현장 실사 및 실무자들과의 회의를 통해 새로운(New) 복고(Retro)의 거리(Road)의 의미인 ‘뉴트로드(Newtroad)’라는 브랜드 네임을 제안했고 영월군청의 승인을 얻어 세부작업에 착수했다.

복고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만큼 제작되는 인쇄물은 최대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담기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릴 적 친구들과 동네를 우리만의 가상세계로 정하고 지도를 직접 그려서 가지고 돌아다니며 놀던 것을 떠올렸다. 당시 우리가 좋아하던 떡볶이집은 용사의 쉼터였고 가기 싫던 학교는 악마의 소굴로 표시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 아이디어를 확장하여 안내서의 전면은 영월의 토박이 청년이 친구들에게 손 그림으로 지도를 직접 그려주며 상세히 알려주는 컨셉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그려진 지도 곳곳에는 일반적인 정보 외에 지역민들만 알고 있는 듯한 노하우와 추천 정보를 집어넣어 마치 보물찾기 하듯 거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지도와 장소를 직접 그린 손그림으로 표현한 영월 뉴트로드 체험 안내서 앞면

안내서의 뒷면은 축척에 따른 정식 지도를 디자인해 넣었고 정확한 정보를 표기하여 공공 인쇄물의 표준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대신하여 한 장의 접지로 된 지도 안내서를 들고 다니면서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오롯이 흥미로운 사용자 경험으로 각인 되도록 유도한 것이 이 인쇄물의 제작 의도이자 목적이었다.

정식 지도와 인포그래픽으로 디자인된 영월 뉴트로드 체험 안내서 뒷면

그렇게 완성된 안내서의 초안을 유사부에게 전달했고 유사부는 영월군청 관계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발표를 진행했는데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단순히 일차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기존의 인쇄물과는 달리 사용자의 경험적 요소가 담긴 디자인과 개연성 있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 의도대로 잘 전달된 듯했다.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되었고 제작한 안내서는 실제 방문객들의 온라인 활동을 통해 널리 공유되고 있다. 의뢰받은 일이었지만 지방 소도시의 활기를 되찾는 일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나 역시 영월이라는 도시를 잘 몰랐지만 직접 걸어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과 같이 이 안내서를 통해 그곳의 정겹고도 편안함의 정취가 방문하는 이에게도 잘 전해지기를 바란다.

ROVEWORKS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1인 사업가이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생각을 전달하는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일 잘하는 일은 아무것도 안하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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