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쿠바 음악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으로 유명한 ‘빔 벤더스(Wim Wenders)‘의 작품으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야쿠쇼 코지’가 제76회 칸 영화제(2023)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연기로 한 중년 남성의 반복되는 일상을 감각적으로 담은 영화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도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인생과 행복의 본질에 대한 담론으로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중년 남성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청소 도구가 실린 미니밴을 운전해 도쿄의 곳곳에 위치한 공공 화장실로 출근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메뉴로 점심 끼니를 때우며 같은 위치에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낡은 필름 카메라로 담는다. 퇴근 후 늘 찾는 목욕탕에서 목욕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다 잠자리에 든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순간순간 비추는 그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하다.
유난히도 과묵한 그의 모습에서는 무엇인지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지나온 삶의 무게가 담겨 있다. 그가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은 생각지도 못한 일로 반복되는 일상이 변주될 때가 유일하다. 그의 일상은 반복되기에 가치가 있다. 익숙함속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변화들을 수집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그에게 반복은 희석이 아닌 중첩이다. 하루하루 더해질수록 단단해지는 그의 일상을 통해 언젠가는 무너졌던 적이 있었을 자아를 강하게 지탱하며 말로 설명할 필요 없는 스스로의 존엄을 증명한다.
흐린 날로 시작되어 눈부신 일출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빛이 강렬할수록 진해지는 그림자처럼 그가 살아온 인생의 찬란함과 어두움을 동시에 담는다. 그 빛을 마주하는 그의 마지막 표정은 삶의 회환이 고스란히 느껴져 경이로울 정도다. 그렇게 전해지는 인생의 고결함을 통해 영화는 조용히 읊조린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행복하냐고. 당신이 어떤 인생을 살았던 지금은 지금이고 다음은 다음이라고. 당신의 인생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더할 나위 없었다. 나는 어쩌면 이런 영화를 내내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인생을 논하기에는 젊은 나이긴 하지만 삶의 변곡점 앞에서 일상의 가치에 대해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했던 스스로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이 영화의 배경인 도쿄라는 도시의 정취는 주인공의 무심한듯하면서도 역동적인 내면의 정서와 일치한다. 좁은 화면비와 함께 정적으로 찍어내는 인서트 샷은 복잡한 상(想)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음미하기에도 좋다. 여러 해석할 필요 없이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설명하는 듯하다. 평범한 일상에 대한 소중함은 무너진 일상을 경험한 뒤 비로소 찾아온다. 잔잔하게 흐르는 일상을 담은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전한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