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어?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잘 쓰이지 않을 것 같은 ‘초속 5센티미터’라는 단위는 빠르게 다다르고 싶었지만 실제로 나아간 마음의 거리는 한 뼘도 채 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서툰 모습을 봄날의 흩날리는 벚꽃에 비유한 것이다. 실제로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이보다 몇 배는 더 빠르다고 하지만 좀처럼 닿을 수 없었던 그 시절이 떠오르게 하는 이 제목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듯하다.
만원 한 장도 아쉽던 시절, DVD를 구매해 소장했을 정도로 나에게 큰 여운을 남긴 영화이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밀하게 표현된 장면들이 그 계절의 냄새와 묘하게 잘 버무려져 마음속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던 몽글몽글한 첫사랑의 감정을 끊임없이 건드린다. 그렇게 잔잔하게 흘러가다 정점에서 흐르는 노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는 그 아련한 기억을 다 커버린 어른의 이야기로 다시 가져다 놓는다.
이 작품에서처럼 봄과 서툰 사랑의 풋내음은 제법 잘 섞인다. 소풍을 떠나던 버스의 옆자리에 앉은 그 아이에게 한마디 말도 못 한 채 머금으며 반대쪽 창밖만 보던 내가 떠올라 그러하며, 대학 신입생 때 벚꽃이 한창인 한강 둔치에 홀로 앉아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던 내가 떠올라 그러하다. 그렇게 늘 싱그럽던 봄꽃 같던 나는 어느새 흩어져 버리고 올해도 다시 피는 꽃을 시기하는 나만 남았다.
어느덧 다시 봄의 시작이 느껴지는 요즘, 영화가 다시 생각나 DVD를 찾아보았지만 도통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사하면서 무심코 쓰레기통에 넣었거나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세월의 두께에 파묻혀 무뎌져버린 나의 첫사랑의 기억도, 지나간 인연들이 남겨 놓았던 그 무수한 감각들도 가끔 한 번씩은 꺼내어지기를 바라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과거를 더듬어보다 아주 오래전에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우연치 않게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혼자 흥분해서 떠들어 대던 내 모습이 떠올라 잠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기억 속에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오타쿠처럼 보였을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수줍게 한마디를 건넸던 옆자리의 그 아이도 있었다.
“저기, 그 DVD 좀 빌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