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담당했던 프로젝트들이 올해 초에 모두 종료되면서 하반기에 갑작스러운 공백기가 찾아왔다. 그동안 비수기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최근의 경기 침체와 심상치 않은 동종 업계의 주변 상황들은 맘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혼자 일을 오래 하면서 요즘 같은 시기는 항상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시기가 다가오니 불안감이 느껴졌다.
당장이야 먹고사는데 큰 문제는 없겠지만 미래에 대한 해답이 없는 한 고민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앉아서 고민만 하는 것보다 남는 시간에 부업이라도 하면 잠시나마 부담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집 근처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가 떠올랐고 평소에도 궁금했던 참에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구직 프로세스가 잘 갖추어져 있어 어렵지 않게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의 야간 업무 시간은 나에게 큰 장점이었다. 수면 시간만 잘 조율하면 낮에는 본업과 관련한 업무와 미팅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체력적 부담이 가중되겠지만 최근 눈에 띄게 떨어져 있던 활력과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근무지가 도보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도 매우 큰 이점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길었다면 아마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의 강도와 업무 환경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최근 쿠팡 물류센터의 근무 환경과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와 관련해 많은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폭염에 근무하면서 냉난방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환경은 확실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통감했다. 업무 강도는 생각보다 수월하다고 느꼈지만 이것도 센터와 맡은 업무 분야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라 객관적 판단은 어려웠다.
나는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유통회사의 물류 업무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느꼈지만 상대적 비교일 뿐이지, 여전히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의 책임만 지려고 하는 기업의 속성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좋지 않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는 괘념치 않으며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많았고 수년을 근속하는 사람도 적잖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날에 들어온 동갑내기 아줌마는 며칠 열심히 나오는가 싶더니 “우리 꼭 여기 아니어도 괜찮지 않아요?”라고 볼멘소리를 내뱉고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아무리 개선된 환경이라 한들 사람을 기계처럼 쓰고 효율이 나오지 않으면 쪼아대는 물류센터의 업무 속성상 그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고역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경험이 없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난 반품 들어온 물건들을 검수하여 재포장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전산 처리 과정이 포함되긴 했지만 난이도가 높지 않은 단순 반복 업무였다. 생활 필수품을 비롯하여 전자제품, 고가의 장신구, 성인 용품까지 없는 게 없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들어왔다. 한번은 포장을 뜯자 수년 전 내가 디자인했던 중학교 영어 교과서가 반품 물건으로 들어와 재포장하면서 묘한 기분을 느낀 적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반품 검수 업무는 나와는 맞지 않았는데 물건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가장 힘든 건 쓸데없이 버려지는 물건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멀쩡해 보이더라도 검수 기준에 따라 재판매가 안되는 물건들은 폐기로 처리되고 포장 박스 쓰레기만 해도 하루에 수십 톤이 넘게 나왔다.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쓰레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물건을 재판매가 가능한 가용 등급으로 만들기 위해 꼼꼼히 검수하고 있으면 어느새 관리자가 다가와 그런 식으로 검수하면 할당된 수량을 맞출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어 보이면 빠르게 리퀴데이션(폐기 대상)으로 보내라고 닦달하기도 했다. 검수해야 할 물건이 끊임없이 들어오기 때문에 빠른 처리가 우선되어야 하는 시스템을 이해하면서도 업무 내내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것까지 반품이 된다고?’라고 할 정도로 누가 봐도 사용 흔적이 분명한 제품도 쿠팡에서는 간편하게 반품 처리가 된다. 이를 악용하는 소비자들도 많아서 한번 써보고 아니다 싶으면 반품을 하는 것 같았다. 그에 따른 비용은 대부분 판매자나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일 테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쿠팡의 반품 정책이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있는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결국 난 고됨보다 업무의 속성으로 인해 일을 지속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 일을 지속하려면 물질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직면해야 하는 동시에 일부 소비자들의 비양심적 행태와 다양한 이유들로 외면받고 버려지는 물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덤덤히 견뎌야 했다. 지구 환경에 대한 걱정은 여기에서는 금기와 같았다. 먹고살고자 하는 일에 이상적 가치관을 대입하는 것이 유별나 보이겠지만 어쩌겠나. 그게 난데.
그렇게 막바지 무더위에 근무를 시작해 추석 연휴를 포함한 20일을 근무하고 막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날 인사팀에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살갑게 대해주던 현장 관리자의 얼굴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신속한 퇴사 절차와 함께 그 마음도 빠르게 정리되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공백기에 호기롭게 시작했던 집 근처 쿠팡 물류센터에서의 경험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짧았지만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성실함과 꾸준함의 미덕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삶의 무게를 버텨내며 묵묵히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 경험은 오랜 시간 혼자서 일한 나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기도 했다. 새벽 4시, 귀갓길 밤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들을 보며 까마득하고 적막한 도로에서 무게감 있게 울려 퍼지는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갑작스럽게 투잡으로 쿠팡 물류센터 야간근무를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을 때 아내의 표정이 기억난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동공과 어두워진 낯빛으로 “왜 그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던 아내는 20일 남짓으로 끝난 나의 일탈에 “거봐. 오래 못할 줄 알았어.”라며 핀잔을 주었지만, 근무 기간 내내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던 아내는 비로소 다시 안도감을 찾은 모습이었다.
난 다시 본업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들어온 신규 프로젝트와 기존 거래처의 의뢰로 손가락 빨 걱정은 조금 뒤로 미룰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좀 벌었을 뿐이지 인공지능이 내 밥그릇을 빠르게 뺏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앞날이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다. 다음 공백기에는 건설 현장일이나 배달 알바를 고려중이다. 다행히도 난 집을 직접 지은 적이 있고 소싯적 아버지 자영업을 도우며 배달을 했던 경험이 있어 두 직종 모두 경력직이다.
여전히 집에서 나올 때 한편에 자리한 쿠팡 물류센터 건물을 마주치게 된다. 출퇴근 시간에 근처를 지날때면 전국에서 몰려오는 통근버스로 인한 교통 체증으로 짜증을 내기도 했었지만 이제부터는 그 안에서 펼쳐지는 치열하고도 진한 삶의 냄새를 느낄 수 있기에 멀리서나마 작은 응원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쿠팡의 기업 이념과 행보를 지지하진 않지만 그 안에서 나와 같은 사람이 아직도 묵묵히 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