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해외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아니 즐기지 못한다는 말이 더 가깝겠다. 성향상 여행에 큰 욕구를 느끼지 않기도 하지만, 비행기를 잘 타지 못하는 지극히도 개인적인 결점에서 오는 부담감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때문에 동남아도 크게 마음을 먹어야 겨우 다녀올 정도이며, 제주도와 일본을 인생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이유도 그보다 먼 여행지는 시도조차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는 해외여행을 제안한 그는 나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린 총각 때, 일본 미야자키 여행을 함께 다녀왔고, 부부동반 제주도 여행도 함께 다녀올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그가 여행지로 제안했던 일본의 대마도는 제주도보다 가깝고 배로 1시간 조금 넘는 시간에 갈 수 있는 ‘해외’ 여행지였다. 평소 대마도라는 여행지를 딱히 가볼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기질적으로 배려심이 많고 세심한 그와 떠나는 여행은 항상 즐겁고 기억에 오래 남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여행지가 일본일 경우에는 그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 덕분에 현지에서 좀 더 친숙하고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단둘이 보내게 된 여행은 어느 때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40대의 가장 둘이서, 만삭의 아내와 아이를 남겨두고, 일이 아닌 여행으로, 2박 3일로 떠나는 해외 일정이었다. 표면적인 상황을 본다면 ‘그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터. 역설적으로 ‘그게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답은 쉽게 얻을 수 있다. 결론은 결혼을 잘 해야 한다. (그 아내들도 이 글을 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더 내밀한 이야기를 기록하지 못하는 점은 양해를 구한다.)

어쨌든 40대 아저씨 둘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부산에서 만나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대마도행 배를 타고 들어가서 1박 후, 마지막 날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첫날 점심때쯤 우린 부산역에서 만났다. 배낭 하나에 카메라와 생필품들을 쑤셔 넣고 가벼운 차림으로 터덜터덜 서로를 향해 걷고 있는 모습이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비슷했다. 아저씨들에게 여행용 캐리어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우리 둘이 여행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일정은 그가 주도하는 편이다. 그도 딱히 계획적이거나 치밀한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대책 없는 여행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를 그냥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여행에 대한 경험치가 상대적으로 매우 낮기도 하거니와, 동반자가 세운 계획에는 크게 토 달지 않고 잘 따르는 편이기에 언젠가부터는 암묵적으로 그런 관계가 되었다. 이렇게 다시 단둘이 가는 여행이 가능했던 이유 또한 그런 관계에 둘 다 큰 불만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부산에서의 첫 끼니도 그가 이끄는 곳으로 갔다. ‘발 국수’라는 메뉴의 메밀 국수였다. 메밀은 우리 동네에도 맛집이 꽤나 있어서 큰 감흥은 없겠거니 하고 한입 베어 물었는데 입에서 느껴지는 면의 윤기와 탄력이 일품이었다. 수더분하게 나온 메밀 국수 한 그릇이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외지에서의 첫 식사가 성공적이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역시 그의 선택은 항상 옳다.


점심을 먹고 부산항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폭염주의보의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린 그냥 걸었다. 하염없이 걸으며 그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타지에서 목적지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좋네요’라고. 지금 나이쯤 되면 목적 없이 무언가를 하는 것에 몹시 인색해지기 마련이다. 시간은 체감상 점점 빠르게 흐르고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강박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런 것들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기에 그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후련했다.






꽤나 걷다가 더위를 피해 충동적으로 들어간 커피숍에서도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통의 관심사인 사진과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곧 출산을 앞둔 아빠로서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 크게 영양가는 없지만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각자의 고민 등, 대화가 통하는 상대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또한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돈벌이, 부동산, 가정사 등의 골치 아픈 주제는 굳이 꺼내지 않아도 모자람이 없었다.




해가 뉘였뉘였 할 무렵에 부산항 근처의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근처의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부산의 바다를 보면서 회 한 접시 하고 싶었던 것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광어와 줄돔 한 마리씩을 주문하고 해 질 녘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여행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색다른 경험을 하진 않았지만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색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역시 여행이 전해주는 특별한 감정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부산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하며, 사실 여행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일상의 변주 속에서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부산에서의 일정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다음날 대마도로 향하는 본격적인 여행 일정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부산-대마도 여행기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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