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 : 부산-대마도 여행기 2편
행복한 시간은 언제나 빨리 지나간다. 어느새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후에 이즈하라항에서 배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짧은 일정에 아쉬움이 제법 남았다 한들, 빠듯한 시간에 일정을 꾸역꾸역 끼워 넣는 방식은 우리 둘의 성향과는 전혀 맞지 않으므로 배를 타기 전까지 적당히 시간을 흘려 보내기로 했다. 새로운 경험을 하기보다는 여행의 여운을 좀 더 여유롭게 즐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동반자가 멀지 않은 곳에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가자는 제안을 했다. 일본에서 온천이라니! 그보다 좋은 여행의 마무리가 있을까 싶었다. 역시 그의 선택은 항상 옳다.



그가 데려간 온천은 기대보다 훌륭했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저렴하며, 무엇보다 전망이 탁 트인 넓은 노천탕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그 바람을 맞으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극락이 따로 없었다. 우리 둘은 한참 동안을 노천탕 안에서 휴식을 즐기면서 여행의 소회를 나누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목욕을 마치고 로비에 나왔는데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맥주 자판기를 지나칠 수 없었다.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뽑아서 목구멍을 열고 크게 한 모금을 쭈욱 들이켜자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온몸을 감쌌다. 운전 때문에 그 느낌을 함께 공유할 수 없는 동반자에게 미안함을 느낄 정도였다.




자동차를 반납한 뒤에 근처를 조금 더 걸으며 사진을 찍으며 거리의 정취를 담았다. 무더위에 이것저것 불어난 짐들로 걸어 다니기 힘든 상황임이 분명함에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쉬이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걷다 목욕재개한 기분이 무색할 정도로 땀에 절은 뒤에야 우리 둘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간 근처 식당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마지막 식사로 나가사키 짬뽕을 주문했는데, 대마도 역시 나가사키현이라 그런지 아니면 허기짐과 여행 감성의 보정 효과 때문이었는지 역시나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엄청난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소나기에 우리는 식당 맞은편 처마에서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여름날의 역동적인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이 또한 여행의 묘미였다.






출국 수속 시간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어 근처 커피숍에서 담소를 나누며 짧았던 여행의 여운을 즐겼다. 7년 만의 일본이자 생애 첫 대마도 여행, 사실 오기 전에는 큰 기대는 없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이기도 했고, 앞서 언급했던 ‘혐한 정서’의 논란으로 인한 거부감이 가보기도 전에 기대치를 낮추게 하는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실제로 ‘전범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노인을 목격하긴 했지만, 그런 일부의 모습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지 않은가.) 막상 직접 와보고 내가 경험한 대마도는 그런 편견들로 평가 절하될 여행지는 전혀 아니었다. 비록 관광 산업의 의존도가 높고 자생이 어려운 시골이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더불어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하고 순환하는 곳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마치 예전에 신혼여행으로 정말 좋은 영감을 받고 왔던 베트남 다낭이 너무 흔한 여행지라는 이유로 ‘경기도 다낭시’라고 폄훼되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것과 유사한 감정이었다.





여행 중에 자국인들과의 대면이 적었던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들렸던 카페에서는 마치 ‘내가 한국 번화가의 스타벅스에 들어온 건가?’ 싶을 정도로 특유의 왁자지껄한 수다 소리가 한국어로 난무하는 상황을 맞았다. 그렇게 우린 대마도에서의 마지막 커피타임을 젊은 여자 여행객 세 명이서 여행 경비를 정산하며 다투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으며 보내야 했다. 만약 여행 일정 내내 이런 상황에 노출되었더라면 내가 느낀 대마도에서의 감정은 완전히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본 문화에 해박하고 여행 경험이 많았던 나의 여행 동반자가 만약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자국인들이 덜한 장소를 추천하며 나를 데리고 다녔던 거라면 이 사람은 정말 여행의 귀재다. 사실 그 정도까지 치밀할 필요는 전혀 없었겠지만 서도 말이다.


저녁시간이 되어서 우리는 부산으로 돌아왔다. 부산역 근처의 식당에서 돼지국밥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했다. 총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마치 육군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을 때, 친했던 동기와의 이별을 앞두고 있는 마음과 유사한 감정을 잠시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린 둘 다 출산을 앞두고 있으며 앞으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평생을 단둘이 여행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상황을 받아 들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여행 자체가 각자의 인생에서는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결혼 잘했다고 호언은 했지만 40대 유부남 둘이 가족을 두고 해외 여행을 떠나는 게 어디 그리 쉽겠는가.


때문에 다소 호들갑스럽지만 아련한 감정을 감출 수 없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실제로 출발 시간이 다른 탓에 역에서 빠른 이별을 해야 하는 아저씨 둘의 모습은 마치 근처에 있던 휴가에서 복귀하는 군인과 그의 연인으로 보이는 여자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연인과 우리 둘의 흔한 헤어짐이 미련스럽게 남는 공통의 이유는 지금까지의 관계를 지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서로 직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웃기게 쓰려고 그런 불안한 연인의 감정을 빌려온 것이 절대 아니다. 우리 둘은 여행을 통해 서로의 말 못 할 고민과 내밀한 감정을 공유했지만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그 친밀함은 힘을 잃고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겨져 버릴 것이다. 앞으로 쓰게 될 인생이라는 책의 빈 장이 많이 남아있고, 그 장의 주요 서사는 서로가 아닌 각자의 가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즐겼던 이번 여행의 기억이 쉬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소중한 여행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함께 해 주었던 동반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번 여행에서 볼 수 있었던 그의 자상함과 세심함, 천진난만함이 곧 세상에 나올 그의 아이에게도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부산-대마도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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