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유부남들의 일탈 : 부산-대마도 여행기 2

삶의 무게에 지쳐있던 40대 유부남들의 2박 3일간의 짧은 일탈, 부산과 대마도 여행기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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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대마도로 향하는 둘째 날의 아침은 정신없이 시작되었다. 어이없게도 우리 둘 모두 다음날 일정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냥 출발 시간에만 맞춰서 가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결국 발권과 출국 수속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채 늦잠을 자버렸고, 뒤늦게 늦었음을 인지하고 허겁지겁 터미널로 향했다. 아마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한 여행이었다면 온갖 불평과 불만을 들어야 할 상황이었을 터. 하지만 대책 없는 아저씨 둘은 그런 상황에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보며 허탈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다행히 때마침 잡힌 택시와 기다려준 직원의 배려로 아슬아슬하게 발권을 할 수 있었고, 다음부터는 신경 써서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반성하면서도 ‘정말 어떻게든 되긴 되는구나..’라고 속으로 감탄한 것도 사실이었다. 계획적이지 않은 여행은 이런 ‘우연한 행운’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매력이 있지만, 자칫하면 여행 자체를 망쳐버릴 수도 있는 위험도 존재함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우리의 여행은 그런 매력과 위험이 마치 외 줄을타듯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었다.

부산에서 대마도행 배편은 1시간을 조금 넘는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가깝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경험하니 한국 사람들이 왜 대마도를 그렇게 많이 가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쾌속선이라 뱃멀미가 신경 쓰였는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잔잔한 파도와 짧은 항해 시간 덕분에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 대면한 대마도는 가까운 거리의 여행지였음에도 일본 특유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적하지만 잘 정돈된 거리와 차분하게 가라앉은 시골 마을의 고즈넉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다만 관광객들이 만들어 내는 공해로 인한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하는 불편함이 일부 존재했다.

조금 민감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최근 불거졌던 대마도의 혐한 정서를 현지인 탓만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던 이유도 그러했다. 같은 관광객으로서도 민망할만한 상황들을 입도한 직후부터 느낄 수 있었는데, 길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한국 담뱃갑들과 화장실 벽에 남겨진 한국 사람의 이름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던가, 여기저기서 공공연히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한국말은 분명 마을의 분위기를 해치고 조용한 여행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들었는데, 여기서는 적정 수준을 벗어난 일부 관광객들의 민폐스러운 존재감이 그보다 높아 보였다. 자국인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싶지는 않지만, 오랜만의 해외여행을 경험한 내향적인 40대 아저씨에게는 조금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그 외의 모든 요소들은 만족스러웠다. 히타카츠 항구의 터미널에서 나온 직후부터 나는 쉴 새 없이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러댔다. 여행지를 경험하는 나름의 방식이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 장소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하염없이 걸어 다니는 것과 챙겨간 카메라와 나만의 시선으로 그 찰나의 순간들을 남기는 것이다. 다행히도 여행 동반자는 취향이 비슷하고 나의 방식도 충분히 존중해 주었기에 짧은 시간 대마도를 경험하고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 나아가 그는 챙겨온 휴대용 짐벌 카메라로 나와 대마도의 풍경을 촬영해 주었다. 덕분에 여행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영상 한편도 제작할 수 있었다. (대마도 여행 편집 영상 링크 | 로브웍스 유튜브 채널)

도착한 히타카츠항에서 다음날 돌아가는 이즈하라항까지 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여유롭게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일정은 아쉽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도보와 대중교통을 최대한 활용했겠지만 불가피하게 자동차를 렌트했다. 나의 여행 동반자는 국제면허도 소지하고 있었기에 운전도 도맡아 했다. 여행 계획부터 현지에서의 이동까지 너무 많은 것을 부담시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 또한 나름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니, 독사진 열심히 찍어주기와 긍정적인 호응으로 리더에 대한 존중을 표현해 주기 등이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좀 염치가 없었음을 새삼 느낀다.

여행 일정 내내 운전을 책임져준 동반자에게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차를 타고 처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미우다 해변으로 일본의 아름다운 100대 해변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여름을 살짝 벗어난 시기이기도 하고 짧은 일정이라 바다에 들어갈 거라는 기대를 하지 못했지만 해변에 도착한 순간, 여긴 그냥 보고만 지나칠 수 없다는 충동이 느껴졌다. 어느새 난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바다에 빨려 들어가 에메랄드빛의 잔잔한 물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힘을 빼고 맑은 하늘을 향해 몸을 둥둥 띄우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황홀함이 느껴졌다.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했다. 더 오래 머물 수 없음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대마도 여행의 많은 부분을 담아 가는 기분이었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도 좋았다. 여유로운 도로 사정과 더불어 주변으로 한적한 마을을 가로질러 가다가 울창한 나무와 숲이 펼쳐지는 등의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 제법 낭만적이었다. 그렇게 멋진 드라이브를 하다 잠시 들른 곳은 제법 큰 규모의 마트였다. 조금 웃기지만 나와 여행 동반자는 소소한 먹거리와 생필품 쇼핑을 좋아하는 취향도 닮았다. 일본어에 능통한 그는 한자와 일본어를 번역해 주며 어떤 제품인지 하나하나 나에게 설명해 주었고, 나는 그 친절한 설명에 이끌려 홀린 듯이 물건들을 카트에 담았다. 한국인 아저씨 둘이 수군대며 이것저것을 담는 모습이 조금 특이해 보였는지 마트 직원이 다가와 혹시 면세 쇼핑하는 거냐고 먼저 물어보기도 했다.

쇼핑을 마치고 이즈하라로 이동하는 동안 전망이 괜찮은 곳이 있으면 근처에 차를 세우고 무작정 내렸다. 이렇다 할 계획 없이 돌아다니며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 여행이 전혀 억지스럽거나 비효율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앞서 말했듯, 40대의 아저씨 둘에게는 홀로 외진 장소로 떠나온 자유 그 자체가 여행의 본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꼭 가보아야 할 관광명소’라던가 ‘핫 플레이스’ 등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냥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누군가 한 명이 “오, 여기 괜찮은데?” 하면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챙겨 내리는 식이었다. 그렇게 몇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각자의 영감과 추억을 남기고 우린 대마도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날을 보낼 숙소로 향했다.

이즈하라의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고 숙소 근처에 이자카야를 찾았다. 늦은 저녁 겸, 여행의 회포를 푸는 장소로 적합해 보였다. 가장 먼저 주문한 생맥주와 닭 껍질 꼬치를 시작으로 라멘과 모둠 꼬치, 교자 등을 추가로 주문하고 아쉬운 마음에 처음 먹었던 닭 껍질 꼬치를 다시 주문했다. 안주 한두 개에 생맥주 한 잔으로 잠시 머물다 가는 현지인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어딘가에서 일본의 이자카야는 한국인 손님을 매우 선호하는 편이라는 후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그 이유를 증명한 셈이었다. 나는 일본어에 능통한 동반자에게 “한 잔 더 주세요”를 멋지게 말하는 법을 알려 달라고 했고, 어설프게 구사한 나의 주문을 들은 종업원은 내 맥주를 제법 늦게 가져다주었다.

숙소로 돌아와 일정을 마무리하며 오늘 하루의 경험들을 머릿속으로 갈무리했다. 좋았던 많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소중한 시간을 함께 만들어준 여행 동반자에 대한 신뢰였다. 문득 ‘함께 유럽 여행을 가서 한 번도 싸우지 않은 커플이라면 결혼하는 것도 괜찮다.’라는 속설이 떠올랐다. 뒤늦게 오른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난 이 사람과 유럽도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하는 괴이한 상상도 잠시 했을 정도였다. 아내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서로를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배려하는 이런 관계는 사랑하는 사람과는 다른 종류의 친밀함이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나중에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오고 싶다는 공통의 결론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지만 말이다.

부산-대마도 여행기 3편에서 계속.

본 게시글에는 저자의 여행 동반자가 직접 찍고 보정한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단 사용이 불가하며 저작권과 관련한 문의는 당사자에게 직접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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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1인 사업가이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생각을 전달하는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일 잘하는 일은 아무것도 안하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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