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번째 도쿄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결혼 후 첫 해외 여행이기도 했고 처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일종의 효도여행의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회사 출장으로 짧은 일정으로 다녀온 후, 간직하고 있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처가 부모님을 모시고 휴양지도, 패키지도 아닌 복잡한 도심의 자유여행이라니! 누군가는 철 없는 신혼부부의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이 여행을 누구보다 기다리셨던 장인, 장모님이었다.
따져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유 여행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못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정보의 부재, 언어의 장벽 등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커지는 그 세대에는 자유여행은 선택지에서 자연스럽게 배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낯선 도시를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만끽할 수 있는 여행의 정취는 세대를 불문하고 모든 여행자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오랜 시간 잊고 살았던 만큼 그 자유로움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은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아온 우리와 비할바가 아닐 것.
때문에 효도여행이라고 그 목적지와 동선을 달리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이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때로는 많이 걸어야 하는 장소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매일 만보가 넘는 도보 일정에 먼저 나가떨어진 건 부모님이 아니라 나였다.
도쿄 같은 대도시를 여행할 때 늘 첫 일정으로 선택하는 것은 시티버스투어이다. 특히 날이 어수룩해질 무렵의 투어가 좋았다. 화려한 조명에 둘러쌓인 랜드마크와 도시의 야경은 감성적인 분위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목적지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잘 알려진 관광 명소부터, 도심 속 공원,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핫플레이스 브런치 식당, 화려한 신주쿠 밤거리까지.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맞춰 즉흥적으로 찾아간 곳들이었다.
여행은 날씨가 반이다. 4월 중순의 선선하면서도 맑은 날씨는 도보 여행을 좀 더 여유롭고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 주었고 목적지 없는 발걸음의 무게감을 덜어 주었다.
4년만에 다시 방문한 지유가오카 거리는 그 때와 큰 변화가 없었다. 부촌임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브랜드의 상점 대부분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우리나라 홍대나 이태원이 겪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과는 대비되어 인상적이었다.
산책 겸 들른 메이지 신궁은 소문대로 장엄하고 깊은 숲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메이지 시대 일왕을 기억하며 참배하는 길이라고 하니 그 의미가 와닿진 않았지만 어찌 됐던 도심의 이런 숲길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 깊은 방문이었다.
여행 막바지에 방문한 아사쿠사 신사는 이번 여행이 효도의 목적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한 목적지였다. 늘 북적거리고 정신 없는 장소이긴 하지만 도쿄 최고의 명소이며 멀지 않기 때문에 굳이 아쉬움을 남길 필요는 없었다.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는 필수 코스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과장해서 도쿄 전역의 먹거리, 기념품, 여행하는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종합 선물세트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간간히 들리는 ‘너무 비싸다!’ 등의 한국말이 반갑기도 했다.
동선을 미리 정하지 않은 자유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처가 부모님과의 큰 마찰 없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 특별한 경험이었다. 출발 전 부터 ‘나의 여행이 아니다’ 라고 스스로 못 박았던 것이 무색할 만큼 두분은 여행 내내 좋은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여행에는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기묘한 힘이 있다. 마치 평소에 잊고 살았던 내면의 감성을 함께 꺼내어 보듯 일상에서 느껴졌던 거리감 따위는 없었다. 아마도 그 마음이란 건 잠시 시들었다가 어느 계절이 오면 다시 활짝 피는 꽃처럼 늙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서툰 가이드를 위해 알게 모르게 배려해 준 부분들이 많았을 것. 사소한 실수와 시행착오도 여행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 주었던 그 분들의 품격이 이번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언제가 있을 다음 여행지를 천천히 고민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