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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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의 제주 태교여행

코로나 시국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떠나 더 특별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제주에서의 태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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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 아내의 임신소식과 함께 거의 동시기에 놀랍게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 일어났다. 덕분에 우린 거의 6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꼭 필요한 외출을 제외하고는 바깥 출입을 자제했다. 몸이 불편한 아내에게는 자발적 감금 상태나 다름 없었다. 이대로 출산까지 10개월의 시간을 보내다가는 코로나가 아니라 정신 이상으로 어떻게 될 지경이었다.

그해 여름 대규모 확산이 시작되기 전,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던 시기에 어쩌면 다신 허락되지 않을 수도 있는 태교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장소는 우리가 좋아하는 제주.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그 시기에 어렵게 떠나게 된 제주행 비행기

아이를 가진 신혼부부와 곧 결혼을 앞둔 커플의 조합이었다. 두 커플 모두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앞둔 시점이자 경험해보지 않은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설레임이 여행과 닮았고, 서로의 모습과도 닮았기에 여행의 동반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임산부와 함께 하는 불편함을 동반한 여행임에도 기분 좋은 배려로 답해 준 그들의 심성에 감동했다.

제주 공항에서 기념사진. 우리가 여행을 떠난 시기가 어떤 시대였는지 이 한장의 사진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무더위에 지친 우리 일행은 도착하자 마자 바다로 향했다. 질병이 창궐하기 전 제주의 여름 보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성수기 다운 인파를 자랑하는 제주의 바다였다. 맑은 물속에 몸을 담그니 어느새 더위는 사라지고 청량한 기분만 남았다.

계획적인 성격의 아내의 절친 덕에 우린 여행 동선을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볼것, 놀것, 먹을것, 그녀가 만들어온 지도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그녀는 그 동안 대책없이 떠돌던 어린양들의 멱살을 잡고 구원의 길로 이끌었고, 덕분에 우리는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실속있는 여행 루트를 경험했다.

제주 하면 흑돼지와 갈치 조림만 알던 우리는 그녀의 맛집 루트에 또 한번 감탄했다. 맛있는 음식도 좋았지만 이른바 ‘힙’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기에 더 좋았다. 그녀의 제주는 그 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것보다 활기와 에너지가 넘쳤으며 젊음이 가득했다.

오후에는 서귀포시에서 명소 ‘방주교회’를 방문했다.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재일교포인 ‘이타미준’이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설계한 건축물로 인공 수조 위에 건축된 건물이 마치 떠 있는 듯한 방주를 연상케 했다. 물과 구름 사이를 유려하게 구획하는 직선적인 느낌이 아름다웠고 소외되는 공간 없이 풍족하게 채워진 풍광은 마치 차별 없이 모든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는 종교적 가르침을 닮은 것 같았다.

둘째날의 마지막 장소는 제주시의 야간 명소로 유명하다던 수목원길 야시장이었다. 화려한 조명과 어우러진 제주의 숲길이 이색적이었다. 젊은 사람들과 다양한 먹거리, 간간히 자리 잡은 오락시설과 벼룩시장. 한번쯤은 방문해도 후회하지 않을 즐거움이 있는 곳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은 각자의 루트로 움직이기로 했다. 함께 다니는 것도 좋지만, 어렵게 온 여행이니 만큼 서로만의 시간도 분명 필요했을 것. 무엇보다 여행 내내 임산부를 신경써야 했던 지인 커플에게 미안함도 있었기 때문.

우리는 섭지코지로 향했다. 안정기의 임산부에게 걷기 운동이 좋다하여 많이 걸으면서 좋은 풍경을 볼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언덕 능선을 따라 아름답게 펼쳐지는 제주 바다의 탁 트인 전경은 그간의 답답했던 기분을 완전히 해소시켜 주는 것 같았다.

마지막 방문지는 ‘용눈이 오름’ 이었다. 제주에는 수많은 오름이 있지만, 제주의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이 그 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평생을 제주에 눌러 앉아 사진을 찍게 만들었던 곳이라 하여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다. 분화구 주변을 따라 걸으면서 보이는 제주의 풍광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많은 방문객들로 인한 훼손으로 곧 출입을 통제하고 식생 회복을 위한 휴식기를 가진다고 하니 어쩌면 마지막 방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용눈이 오름을 마지막으로 여행의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나와 아내는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기본적인 성향이 그럴 뿐더러 일상에서의 행복을 느끼는 것에 더 의미를 두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은 그 조차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여행은 우리에게는 ‘일상의 회복’이자,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비상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행복 연료’가 되어 주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방문할때까지 지쳐 있던 제주도 많이 회복되어 있길 바래본다. 그리고 의미 있는 여행 일정을 함께 해준 지인 커플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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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1인 사업가이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생각을 전달하는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일 잘하는 일은 아무것도 안하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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