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먼 이야기
아내와 나는 결혼을 결심하면서 나눈 몇 가지 전제가 있었는데, 서로의 라이프스타일과 개인적인 시간을 최대한 존중할 것. 하지만 중요한 선택에 기로에 있을 때에는 개인이 아닌 함께 하는 삶에 항상 우선할 것. 마지막으로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것 등이었다. 그 외에 세부적인 규칙이나 계명(?) 같은 것들은 딱히 필요 없었다. 10년 가까이 만나고 결혼을 하게 된 우리에겐 이미 서로에 삶에 많은 부분들이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에 관한 문제는 달랐다. 결혼 전부터 같은 주제로 나름 심도 있는 대화와 고민이 있었지만, 명확한 비전이라던가 해답을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전 우리에게 임신과 출산은 너무도 먼 이야기이자 주변에서 얻는 조언이나 경험치에 대한 기준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또한 결혼 후에 자연스럽게 임신과 출산으로 강제 되는 사회적 담론에 대한 거부감도 조금은 있었다.
그래서 결혼 직후 해당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일단 ‘회피’였다. 어느 한쪽을 명확히 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책임이 크게 느껴지기도 했고, 당시에는 둘 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린 그렇게 그 문제에 대한 결론은 미뤄둔 채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결혼 생활은 너무도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상은 충만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고, 목적을 잃고 방황하던 나의 자존감도 채워주었다. 혼자만의 세상을 살던 이전과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삶이었다. 그렇게 항상 옆에서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 가족. 그런 삶에 대한 동경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정한 아이를 갖는 삶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난 아내에게 진지하게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다. 아내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둘만이 함께하는 삶에 큰 만족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삶에 큰 변화를 주는 선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특별한 전조증상 없이 변절(?) 해 버린 것에 대한 서운함도 토로했다.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아내에게 잘 전달하고 설득해야 하는 불리한 입장이 되어 버렸지만 일단 칼을 뽑았으니 그동안 미뤄 왔던 주제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에게 엄마가 된 모습이 보고 싶다 했다. 그리고 아빠로서의 내 모습도 경험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난 그 역할을 잘 할 자신이 생겼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우린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아내는 어렵게 꺼낸 나의 말을 듣고 고민했고 조금은 마음의 동요가 생긴 것 같아 보였다. 이후 우리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꺼내고 조율하다 합의점을 찾았다. 1년. 딱 1년만 아이를 갖기 위한 노력을 자연스럽게 해보고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 다음 해부터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아이가 없는 삶을 지속하기로. 그리고 그 결정을 한 지 3개월 만에 나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실 아내를 설득하던 당시 내가 던진 말에 100% 확신은 없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어떤 근거로 다 잘 될 거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한번 선택하면 인생의 방향이 송두리째 바뀌는 중요한 문제이기에 그 무게감은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선택을 회피했던 것은 결코 좋은 방향은 아니었다. 우리가 좀 더 이 문제에 대해 함께 나누고 깊이 고민했더라면 이야기를 꺼냈을 당시 아내가 나한테 느끼는 서운함은 없었을 거라는 후회가 있었다.
나에게 출산과 육아는 함께 살며 내가 느낀 행복과 삶에 대한 만족감을 나눌 사람이 한 명이 더 생긴다는 의미였다. 양육비, 집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그 의미 앞에서는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처음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 그리고 그 선택에 함께 하기로 결심해 준 아내에게 감사했다.
우린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두려움을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비로소 두려움을 이겨내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삶을 이어나갈 때, 한 단계 성장하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변했다. 비혼주의자에서 유부남으로, 딩크족에서 아빠로.
물론 삶의 기준과 방향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만약 행복의 길로 들어서는 입구에 ‘책임’이라는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면 ‘회피’ 보다는 ‘정면 돌파’가 더 낫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아이를 가지기로 한 선택 덕분에 현재의 일상은 타이트해지고 삶은 더 팍팍해졌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나에게 뛰어오는 아이와 아내를 보았을 때 느껴지는 행복감이 모든 부침을 상쇄하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