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브랜드를 알게 된 것은 국내에 아웃도어 열풍과 함께 유명 연예인들이 입고 나와 유명해진 흰색 양털 재킷이 오래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 난무하던 그때쯤이었다. 특별해 보일 것이 없었던 이 무난한 스타일의 옷의 인기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유행에 괜한 거부감을 느낀 난, 이 브랜드의 제품에 눈길조차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최소한의 소비를 지향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이 브랜드를 다시 눈여겨보게 되었다. 해지거나 망가진 게 아니라면 새로 사지 말고 입던 거나 계속 입으라고 말하는 이 브랜드. 나아가 우리 제품을 사지 말라고 당당하게 광고를 내는 이 브랜드의 속내가 궁금했다. 바로 파타고니아(patagonia)다.
아웃도어에 미쳐버린 대한민국
난 평소에 아웃도어 브랜드를 좋아하지 않았다. 뛰어난 기능성을 강조하며 마치 그 옷들로 무장하면 히말라야라도 정복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과대광고와 상식을 뛰어넘는 높은 가격은 거부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많은 부모들의 등골을 으스러트렸던 학생들의 고가 패딩 사례만 들더라도 그러했다. 당시 모 브랜드의 패딩 열풍이 일자 한국의 겨울은 춥고 산악지형이 많아서 잘 팔리는 것으로 안다던 해당 브랜드 회장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철학이 없었다. 유명 연예인들을 앞세우며 공격적으로 펼친 마케팅은 비싼 가격의 동기가 될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얄팍한 상술은 우리나라에 잘도 통했다. 빌딩 숲 사이에서도 필파워 900 이상의 패딩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전 국민을 워너비 엄홍길로 만들어 버린 아웃도어가 난 달가울 리 없었다.
파타고니아는 단순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아니었다.
수많은 인터뷰와 자서전에 따르면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_Chouinard)는 애초에 기업을 운영할 생각이 없었다. 평소에 클라이밍을 좋아해 주한 미군 시절에도 북한산을 즐겨 오를 만큼 산에 진심이었는데 기성품의 등반 장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제작을 하던 것이 브랜드의 시초가 되었다. 바위틈에 박는 피톤이 환경을 해친다는 것을 깨닫고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 보자고 시작했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에서야 환경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을 표방하는 기업이 많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친환경은 그저 마케팅 문구에 불과했다. 수익의 일부를 환경을 위해 기부한다고 했던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부처와 기부액을 공개하는 데 거부감을 드러냈고, 자신들이 생산하는 제품이 얼마나 환경을 파괴하는지에 대한 고찰은 전혀 없었다. 이윤을 목적으로 한 친환경 정책은 오히려 환경 오염에 대한 책임에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하는 위선적 행보일 뿐이었다.
파타고니아는 달랐다. 환경을 대하는 철학이 또렷하면서도 단순했다. 이익이 아닌 매출의 1%를 환경 재단에 기부하는 것을 기본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에 반감을 느껴 상장조차 하지 않은 이 글로벌 기업의 회장은 최근에는 약 4조 원에 이르는 자신의 전 재산과 가족의 지분마저 환경 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할 정도로 지속 가능한 지구 환경에 대한 진실된 행보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꼭 사야 한다면 파타고니아를 사기로 했다.
파타고니아의 옷은 재활용 소재와 공정 무역으로 생산된 유기농 면을 사용하여 제작되며,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화학물질과 첨가물들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세계 곳곳의 환경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해결을 위한 행보를 지속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브랜드의 철학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 나와 아내도 매우 좋아했던 제주의 송악산이 리조트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반대 서명 운동을 주최했을 정도였다.
이 정도 되면 파타고니아는 이윤을 뛰어넘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브랜드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파타고니아는 가격이 저렴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제품을 구매하며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가격을 지불하는데 큰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국내 유행이 많이 사그라든 지금, 품절 사태도 많이 줄었고 가격도 안정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인율이 높은 이월 상품을 주로 구매하는 편이며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지 않는다.
큰 울림을 전한 파타고니아의 행동주의
올바른 길을 고수하고 지켜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달렸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결정하며 이본 쉬나드가 전한 말은 나에게 큰 울림이 되었다.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것 하나도 어렵게 느껴졌던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과연 나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보게 했다. 작은 실천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장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입고 있는 이 티셔츠를 선택한 이유가 부끄럽지 않도록.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이 있는 데도 하지 않는다면, 악한 것과 다름 없다.
이본 쉬나드(Yvon_Chouin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