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서 오래오래 입으세요”
파타고니아는 자사의 제품을 사지 말라고 광고를 내세울 정도로 불필요한 소비로 인해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경계하는 브랜드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제품에 재활용한 플라스틱과 섬유를 사용하며, 구매한 옷은 최대한 오래 입기를 권장한다. 이러한 철학은 제품의 내구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치며, 불가피하게 파손된 옷은 자체적으로 수선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쳐서 입으라는 슬로건을 곳곳에 내거는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 정책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최근 아끼던 재킷의 후드 스토퍼가 파손되어 파타고니아 코리아 공식 수선 서비스를 경험한 뒤 생각이 달라졌다. ‘국내’ 파타고니아 코리아는 고객이 손상된 옷을 고쳐 입는 것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은 모양이다. 수선비는 비싸고, 수선 기간은 약 2주가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수선 서비스를 이용한 이유는 ‘제대로’ 고쳐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지만 제품을 받아본 후 이 기대마저도 실망으로 바뀌었다.
파타고니아 공식 수선 서비스는 2가지 방법으로 접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가까운 매장을 방문해서 옷을 맡기는 것. 두 번째는 택배를 통해 본사로 보내서 접수하는 방법이다. 매장과 먼 지방 소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는 택배로 접수하기로 했다. 제품을 잘 포장하고 수선 의뢰 내용을 적은 쪽지를 동봉하여 우체국 택배로 보냈다. 배송비 5천 원이 발생했지만 다시 받을 때 배송비는 본사 부담으로 보내준다니 꽤 괜찮은 조건이라 생각했다. 택배를 접수한 뒤, 공식 웹사이트를 1:1문의를 통해 수선 접수 글을 올렸고, 정상적으로 접수되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약 2주라는 생각보다 긴 수선 기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요청 물량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감당하기로 했다. 그리고 약속된 2주 후, 본사로부터 수선이 완료되었다는 내용과 수선비 1만 원을 입금하면 발송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문자로 온 계좌로 비용을 입금하였고, 다음날 물건을 받아볼 수 있었다. 다시 완전해진 옷을 기대하며 포장에서 옷을 꺼내는 순간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선을 요구한 후드 스토퍼는 고쳐져 있었으나 난데없이 지퍼 쪽 봉제가 뜯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스토퍼를 교체하기 위해 해당 부분을 절개하여 교체 후 재 봉합을 하지 않은 듯했다. 뭐, 수선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실수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난 웹사이트에 수선 불만 문의 글을 올렸다. 사실 당장이라도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따지고 싶었지만, 왠지 이후 과정부터는 기록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불편을 감수하고 1:1문의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린지 얼마 되지 않아 달린 본사의 답글은 더 황당했다.
착불로 택배를 보내면 재접수를 통해 ‘미완된 부분’을 다시 수선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난 단순히 재접수를 요청하라는 기계적인 답변이 납득되지 않았다. 파손된 제품을 검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고객에게 보낸 과실이 확인이 되었다면 적어도 물품 수거 절차를 본사 쪽에서 진행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마치 ‘미안한데 다시 고치고 싶으면 보내고 아니면 그냥 입어!’ 수준의 대응 아닌가. 택배로 재접수를 하면 또 2주 가까이 기다려야 된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난 후드 스토퍼 하나를 수리하기 위해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셈이다.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나는 해당 답변에 대해 ‘본사 과실로 인해 발생한 추가 수선에 소요되는 기간을 재차 기다릴 수 없다’라는 불만과 함께 파손 부분은 개인적으로 수선할 테니 기지급한 수선비를 환불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다시 남겼고 본사 CS팀은 그제야 ‘까다로운 고객이다’라는 판단이 들었는지 사후 처리에 대한 내용을 보내왔다. 기지급한 수선비의 환불은 1주일 뒤, 계좌로 입금해 준다는 답변이었다. 환불받는데도 일주일이 걸린다니! 만원 환불을 위해 사장 결재라인까지 올라갔다 와야 하기라도 한 건가. 좀 더 빨리 처리해줄 수 없냐고 물었더니 본사 방침이라고 양해하란다.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파타고니아 코리아’의 서비스와 고객 응대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옷 수선 서비스는 파타고니아가 내세우고 있는 환경에 대한 철학과 오래 입는 옷에 대한 자부심을 연계하는 중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굳이 수선 서비스를 메인으로 내세우지 않는 다른 브랜드들도 수선을 의뢰하면 일주일이면 받아볼 수 있는 것을 파타고니아 코리아는 더 불편하고 번거롭게 만들어 버렸다.
파타고니아 코리아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은 미국 본사의 같은 제품보다 대부분 비싸다. 환율을 고려하더라도 많게는 2배 가까이 차이 나는 제품도 있다. 물론 그렇게 비싸게 책정된 가격에는 라이선스, 유통 마진 등에 대한 비용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만큼 현지에 맞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공식 수입사의 의무일 것이다. 하지만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해외 직구를 막으면서까지 ‘현지화’를 해놓고 브랜드 가치에 먹칠을 하는 이런 행보는 달갑지 않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파타고니아 코리아는 고쳐 입는 것보다 새 제품을 많이 팔고 싶은 것이 속내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도 한다. 수선 기간을 최소 2주라는 긴 시간을 책정한 것, 수선 비용도 일반 수선점에 비해 다소 비싼 것, 형편없는 수선 품질과 사후 관리를 볼 때 말이다. 기업이 매출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파타고니아는 매출 보다는 환경의 선순환을 우선적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이런 행보는 위선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단순히 개인적인 서비스 불만 글을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쓸 일인가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기업 이념에 감동하여 글을 쓴 적이 있고(지난 글 ‘나는 파타고니아를 추앙하기로 했다‘ 참조), 앞으로 가능한 모든 옷을 ‘파타고니아’로 구매하기로 결심하고, 옷장의 반 이상을 이 브랜드의 옷으로 채워 넣은 충성고객의 입장에서 느낀 배신감을 조금은 고려해 주면 좋을 듯하다.
뒤늦게 뜯어진 옷을 가지고 동네 수선집으로 가져가 다음날 찾으러 오라는 소리를 들으니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파타고니아 코리아는 지금도 고쳐 입는 옷에 대한 노하우를 웹사이트에 게시하면서까지 ‘Worn Wear(낡은 옷)’ 캠페인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다만, 제대로 할 수 없는 서비스라면 적어도 자랑스럽게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럼에도 멋져 보이는 이 캠페인을 지속하고 싶다면 앞으로는 이런 슬로건으로 고쳐보면 어떨까?
‘고쳐서 오래오래 입으세요. 다만 스스로 고칠 수 있다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