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니 햇살 좋은 날엔..”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가 거슬리는 목소리를 통해 들려온다. 박기영의 ‘산책’은 첫사랑에 실패한 풋풋했던 스무 살에 내가 떠올라 플레이리스트에 자주 올라갔던 노래였다. 그런데 흘러나오는 노래는 박기영이 아니라 성시경이 리메이크한 버전이었다. 오늘은 좀 새로운 노래를 들어보자 해서 인기 급상승 곡을 스트리밍 한 것이 화근이었다. 좋은 노래도 많이 가지고 있는 양반이 왜 굳이 이 곡까지 손을 댄 건 지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와 그 가수. 그렇게 당사자는 전혀 알 수 없는 악연은 꽤나 오래전부터였다. 원래부터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었지만 결혼 전, 콘서트 티켓 예매에 성공하여 지금의 아내에게 선물했을 때 10년 가까운 연애 기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던 환희에 찬 모습을 본 것이 결정적이었다.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호불호가 명확했던 그녀의 취향에 맞는 선물을 고르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고작 그 가수의 콘서트 티켓 한장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을 보여주다니.
이미 빈정이 상해버린 나였지만 유치하게 내색할 수 없었다. 콘서트 티켓은 두 장이었지만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기 싫었다. 결국 내가 생각해낸 묘안은 아내와 지금의 장모님을 함께 보내 드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티켓을 전달하고 근래 엄마가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아내의 말에 난 또 한번 좌절했다. 결혼 전까지 늘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 보시던 장모님이었다.
그렇게 난 결혼 후에도 반강제적으로 그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대중음악을 잘 듣지 않고 연예인에도 별 관심 없던 아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가수였기에 그마저도 못 듣게 하는 건 매우 편협하고 속좁은 남편의 표상으로 비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출근길 함께 탄 차의 라디오에서 그 가수의 노래가 나오면 내 눈치를 슬쩍 보고는 슬그머니 볼륨을 키우는 모습도 매우 거슬렸지만 모른척해야 했다.
그렇게 좋든 싫든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던 그 가수는 내 일상에도 적잖이 영향을 주었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잔뜩 취해 노래방을 갔을 때 아이러니하게 눈에 들어오는 노래가 그 가수의 곡들 뿐이었다. 가사를 보지 않아도 입에 착 달라붙어 술술 불리는 것이 이미 아내 덕분에 숱하게 들어 단련되어 그런 것 같았다. 아마 당시의 지인들에겐 당연히도 내가 그 가수의 열렬한 팬으로 보였을 것이다.
20년을 넘게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그 가수의 꾸준함 덕분에 악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끔 유튜브나 방송에 나와 넌지시 던지는 농담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거나 추천곡 리스트로 흘러나올 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느껴지면서도 어느덧 나도 그 가수와의 인연이 이미 깊어졌음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자존심은 상하지만 말이다.
작년 연말, 오랜만에 아내에게 좋은 선물을 하고 싶어 다시 한번 그 가수의 콘서트 티켓 예매를 도전했지만 결혼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둔해져 버린 나의 반응속도는 제대로 클릭조차 해보지 못하고 단 몇 초 만에 매진이라는 화면을 보여주며 씁쓸한 마음으로 노트북 화면을 닫게 했다. 애증 어린 마음에 콘서트 예매로 화해를 시도했던 나에게 끝까지 굴욕을 선사한 그 가수였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리메이크 된 그 가수의 ‘산책’을 듣고 있다.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지난 추억들을 떠올라서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노래보다는 조금 더 편하게 들려와 반복 재생하는 내가 싫을 뿐이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아무쪼록 이 글을 쓴 것이 무색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사건 사고 없이 오랫동안 활동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분명히, 여전히 난 성시경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