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재즈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는 사람은 아마 많이 없을 거다.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 장르의 음악들은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할뿐더러 딱히 취향을 타지 않는 대중성과 편안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를 물었을 때 별생각 없이 ‘재즈’라고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그 어설픈 취향이 나를 매우 곤란하게 만들었던 상황이 있었다. 대학의 졸업을 1년 앞두고 휴학 후, 인턴으로 근무했던 디자인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회사는 일분일초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직원들은 예민했다. 막내 인턴인 나는 매 순간 눈치를 보며 정직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똑같이 남이 주는 일 하면서 그렇게 심각하게 굴 필요가 있었냐 싶지만 사회 경험이 전무한 나는 그게 회사 생활의 기본값인 줄 알았다. 살벌한 분위기의 회사에서 당연하게도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중 친절하게 대해 준 직원이 한 명 있었다. 계약직 포토그래퍼로 고용되어 회사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출근했던 박 과장은 다른 직원들과는 다르게 좀 더 활력 있고 붙임성이 있었다. 점심 식사 후 다들 낮잠을 자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반면 박 과장은 나를 흡연구역으로 불러내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냈다.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입을 뗀적이 없을 정도로 기계적인 일과를 보내던 나에게 하루에 10분 정도 허락되었던 그 시간이 나로서는 사람답게 보내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나와 박 과장은 회사 뒷담부터 연애, 취미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그 질문이 나와 버렸고 나는 미끼를 거세게 물어 버렸다.
“인턴님은 혹시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있나요?”
“저는 재즈를 좋아합니다.”
나의 답변을 듣고는 박 과장은 갑자기 눈빛이 돌변하더니 질문 공세를 이어갔다. 어느 시대 재즈를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재즈 음악가는 누구인지, 어떤 음반을 명반으로 생각하는지 등의 매우 세부적인 내용들이었다. 블루노트 컴필레이션 음반 정도만 주구장창 듣던 나의 수준에서 답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머쓱해하며 그 정도까지는 잘 모른다고 대답하니 ‘그 정도 식견으로 감히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하다니..’라고 하는 듯한 눈초리로 재즈의 역사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즈 음반에 대한 설명까지 쉬지않고 줄줄 읊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빈정이 상하면서도 왠지모를 경외심을 함께 느끼며 박과장의 말을 계속 듣고 있어야만 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난 재즈를 많이 듣지만 그 장르에 대해서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박 과장처럼 우쭐대며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건 좀 면구했다. 자주 접하게 되는 것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조금도 없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계기였다.
그때부터 재즈에 대해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재즈의 유래부터 시대적 배경, 발전 과정 등의 새롭게 접한 이론적 지식은 음악을 듣는데 필수 요소는 아니었지만 알고 들으면 좀 더 깊이 있는 감상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들이었다. 100년이 넘는 유구한 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던 재즈를 그동안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배경음악 정도로 홀대하고 있던 것 같아 죄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재즈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자 음악 감상이 더 즐거워졌고 좋아하는 음악가와 음반도 생기게 되었다. 요즘은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Bill Evans)의 음반을 즐겨 듣는다. 섬세하고도 편안한 피아노 선율은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조명이 아른거리는 뉴욕 뒷골목의 어둑한 지하 재즈 바에 나를 데려다 놓는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잡설이 길었지만 나의 재즈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풍요로운 시대에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깊이 있는 취미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새로운 것이 넘쳐나는 지금은 하나만 붙잡고 있기 어렵다. 그 흔한 독서, 음악 감상 등이 이제는 무엇보다 지속하기 어려운 취미가 되어버린 이유다. 한때는 취미 하나만으로도 몇 시간씩 대화가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더라도 좋아하는 세부 분야가 달라 서로의 생각을 깊이 있게 다루거나 때로는 확고한 취향에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런 대화보다는 ‘거기 가봤어?’, 그거 해봤어?’, ‘그거 먹어봤어?’ 등의 경험의 단편만을 공유하는 모습이 흔한 것 같다.
경험의 질을 높이면 동시에 몰입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몰입의 경험은 행복감과 직결되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당시에는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재즈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 박 과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다시 생각해도 빈정이 상할 정도로 방식은 많이 거북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