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는 소박한 삶의 실천과 더불어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아이폰만으로도 기록의 본질에 충분할 수 있다고 판단해 보유하고 있던 모든 카메라 장비를 처분하였다. 꽤 오랫동안 사진 생활을 해오면서 카메라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 멋진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남겨 주었지만, 언젠가부터 이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챙겨야 하는 일이 가족과 함께하는 경험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둘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 외출 시 챙겨야 할 짐이 크게 늘어나면서, 카메라까지 들고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처음 카메라를 처분하고 모든 사진을 아이폰으로 촬영하게 되면서 매우 홀가분했다. 가족과의 외출이나 여행에서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를 챙겨야 하는 부담에서 해방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일상의 영역에서는 스마트폰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여주며, 항상 가까이 지니고 있는 물건으로 일상의 기록과 추억까지 언제든지 간편하게 남길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데일리 카메라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아이폰을 기록의 매체로 활용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묘한 아쉬움도 커져갔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경험이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카메라를 구매하기로 결정했고, 다시 이 불편한 도구와의 사진 생활을 이어나가기로 결정했다.

새로 들인 카메라는 후지필름의 ‘X-T30 iii’ 다. 작년 말 출시한 신제품이자 ‘X-E4’, ‘X-T5’, ‘X-M5’에 이어 내가 사용한 후지필름의 네 번째 카메라다. 2년 전 사용했던 ‘X-T5’와 비교하자면 가격이나 기능면에서 하위 등급의 모델이다. 오랜만에 다시 카메라를 들이면서 이 보급형 모델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였다. 그동안 자꾸 카메라를 처분하고 스마트폰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카메라가 비싸고 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X-T30 iii’는 신품 기준 130만 원 정도로 이전에 쓰던 ‘X-T5’ 보다 무려 100만 원 정도 저렴하다. 물론 고화소의 센서에 기계적 완성도나 세부 기능 등, 그 가격에 상응하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사진을 찍는 경험 자체에 큰 영향을 줄 만큼 치명적인 다운 그레이드는 없다고 판단했다.



‘X-T30 iii’는 미니 ‘X-T5’으로 봐도 될 만큼 비슷한 점이 많다. 센서는 다르지만 화상 처리 엔진은 5세대의 최신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수동 조작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버튼과 다이얼도 유사하게 가지고 있다. 또한 크기도 작고 무게도 상대적으로 200g 가까이 가볍기 때문에 휴대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때문에 ‘X-T5’를 매우 만족스럽게 사용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훨씬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경험을 선사하는 이 카메라가 나에게는 적절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카메라의 기능은 상향 평준화된 지 오래라 그 첨단의 기능들이 상업적으로 사진을 찍는 프로가 아닌 일상의 영역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나의 사진 실력으로는 이 정도 보급형 모델도 차고 넘친다고 생각한다.
| 항목 | X-T30 III | X-T5 |
|---|---|---|
| 이미지 센서 | APS-C X-Trans CMOS 4 | APS-C X-Trans CMOS 5 HR |
| 유효 화소수 | 2610만 화소 | 4020만 화소 |
| 화상 처리 엔진 | X-Processor 5 | X-Processor 5 |
| 셔터 | 기계식 + 전자 셔터 | 기계식 + 전자 셔터 |
| 기계식 셔터 속도 | 30초 ~ 1/4000초 | 30초 ~ 1/8000초 |
| 전자 셔터 속도 | 30초 ~ 1/32000초 | 30초 ~ 1/180000초 |
| 플래시 동조 속도 | 기계식 1/180초 | 기계식 1/250초 |
| ISO 감도 (스틸) | ISO 160–12800 (확장 80–51200) | ISO 125–12800 (확장 64–51200) |
| RAW 레코딩 | 14bit RAW (RAF) | 14bit RAW (RAF) |
| 동영상 촬영 | 6.2K 30p, 4K 60p, FHD 240p | 6.2K 30p, 4K 60p, FHD 120p/100p |
| 연사 속도 (최대) | 전자 셔터 약 30fps (1.25× 크롭) | 기계식 약 15fps / 전자 셔터 약 20fps (1.29× 크롭) |
| AF 센서 | TTL 컨트라스트 + 위상차 | TTL 컨트라스트 + 위상차 |
| 저조도 AF 성능 | -7.0EV (XF50mmF1.0 장착 시) | -7.0EV (XF50mmF1.0 장착 시) |
| 뷰파인더 (EVF) | 0.39인치 236만 화소 | 0.5인치 369만 화소 |
| LCD 모니터 | 3.0인치 틸트 162만 화소 터치 | 3.0인치 3방향 틸트 184만 화소 터치 |
| 디지털 손떨림 보정 | 동영상 모드에서만 사용 가능 | 동영상 모드에서만 사용 가능 |
| 손떨림 보정 (IS) 기능 | 불가능 (바디 IS 없음) | 5축 바디 IS (최대 7스탑) |
| 무선 (Wi-Fi) | Wi-Fi 802.11b/g/n | Wi-Fi 802.11a/b/g/n/ac |
| Bluetooth | Bluetooth 5.2 | Bluetooth 4.2 |
| USB | USB-C 10Gbps | USB-C 3.2 Gen2 |
| 배터리 | NP-W126S | NP-W235 |
| 배터리 수명 (CIPA) | 약 315장 (스틸) | 약 580장 (스틸) |
| 크기 (W×H×D) | 118.4×82.8×46.8mm | 129.5×91×63.8mm |
| 무게 (배터리 포함) | 약 378g | 약 557g |
| 기타 차이점 | 내장 플래시, 필름 시뮬레이션 다이얼 | 방진방적, 듀얼 SD카드 슬롯 |
물론 카메라를 선택하는 이유에서 나와는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더 빠른 AF(자동 초점 기능)와 연사 속도 등의 뛰어난 기능, 고급스러운 소재와 기계적 완성도가 높은 카메라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은 플래그십 모델을 선호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첨단 기능을 갖춘 고급 카메라가 결코 사진을 더 잘 찍게 해주거나 좋은 결과물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이건 나의 20년 사진 생활을 걸고 장담할 수 있다. 한때는 나도 장비병에 걸린 사람으로서 꽤 오랜 시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진심으로 대하고 잘 찍는 사람이라면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도 아주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카메라를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비싸고 좋은 카메라를 사는 것을 단순히 허영이나 사치라고 치부할 일은 또 아니라는 것만 알아 두자. (나의 꿈의 카메라가 아직도 라이카 M인 이유도 그러하다.)





만약 나처럼 예산에 한계가 있고 일상적인 범위 내에서 카메라를 통해 사진 생활을 진지하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X-T30 iii’를 꽤 적합한 모델로 추천하고 싶다. ‘X-T..’시리즈의 특징인 아날로그적 조작 계통은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재미와 몰입을 느끼게 한다. 또한 아담하고 수려한 디자인 덕분에 카메라에 정을 붙이고 더 자주 들고나가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데, 카메라를 통한 사진 생활의 반 이상은 외출 시 카메라를 챙겨서 다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순간 집안의 장식 오브제로 전락하다가 결국 아주 괜찮은 중고 매물로 나오는 일이 다반사다. 나 또한 그런 매물을 많이 만들었던 당사자이기도 하고.


초보자들의 입장에서 ‘X-T30 iii’의 장점을 몇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다소 복잡해 보이는 아날로그 디자인과는 별개로 의외로 조작하기 쉽다는 것이다. 상단에 위치한 오토 모드 다이얼을 돌려놓으면 복잡한 설정 필요 없이 카메라가 자동으로 최적의 노출과 설정값을 세팅해준다. 사용자는 그저 구도만 잡고 셔터만 눌러도 꽤 괜찮은 사진이 찍힌다. 그렇게 사용하면서 조금씩 노출과 구도를 공부하고 천천히 수동 조작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도 있다. 또한 후지필름 카메라의 전매특허인 필름 시뮬레이션 기능을 상단 다이얼로 탑재하여 여러 색감의 필름을 직관적으로 변경하여 촬영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후지필름 카메라를 선택하는 이유가 이 필름 시뮬레이션 기능 덕분이니 이 직관적인 다이얼을 채용한 것은 마케팅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X-T30 iii’는 사진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와 카메라에 능숙한 사람 모두에게 괜찮은 카메라다. 후지필름 카메라가 전반적으로 성능에 비해 가격이 꽤 높게 책정되어 있다는 평이 많지만, ‘X-T30 iii’는 합리적인 가격에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카메라다. 다만, 렌즈 교환식이다 보니 어떤 렌즈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예산의 변동폭이 커지기에 입문자라면 비교적 저렴한 키트에 포함된 번들렌즈(XC13-33mm)를 추천한다. 번들렌즈로도 충분히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처음부터 렌즈에 큰 욕심을 부리지 말자. 실력을 늘려가며 천천히 렌즈를 바꾸거나 추가하는 것도 사진 생활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렌즈 교환식이 부담스럽다면 후지필름의 베스트셀러이자 렌즈와 바디의 일체형 카메라인 ‘X100VI’가 있다. 다만 출시 2년이 넘도록 이어진 품귀현상으로 구하기가 어렵고 가격 또한 200만 원대로 초보자가 구매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오히려 이쪽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겠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그럼 왜 그 편하고 가성비 좋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지 않고 다시 카메라를 들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사실 사진을 찍는 행위의 목적으로만 따지자면 카메라는 여간 귀찮은 물건이 아니다. 비싸고 무거운 장비를 챙기고, 적정 노출과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눌러 카메라에 화상을 저장한 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이미지를 옮겨야 비로소 한 장의 기록이 완성된다. 반면 스마트폰이라면 주머니에서 꺼낸 뒤 터치 몇 번으로 그 모든 과정을 간편하게 할 수 있기에 그 불편함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다시 카메라가 그리웠던 것일까?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의미가 단순히 결과물을 남기는 것을 넘어 그 과정 자체에 스며든 감각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카메라는 나의 시선과 시간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 눈앞의 풍경을 서둘러 ‘캡처’하기보다 빛의 방향을 살피고, 피사체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프레임 안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비워둘지 고민하게 한다. 셔터를 누르기 전의 짧은 침묵, 숨을 고르는 순간, 그리고 미묘한 긴장감 속에서 나는 비로소 그 장면을 온전히 바라보게 된다.




스마트폰 사진이 ‘즉각적인 기록’이라면, 카메라 사진은 어쩌면 ‘천천히 쌓아 올린 기억’에 가깝다. 불편함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집중과 몰입,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는 감각이 나를 다시 카메라로 이끄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사진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주했던 풍경과 시간,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나 자신일 것이다. 수년 전까지 그 무거운 카메라 장비들을 큰 가방에 쑤셔 넣고 높은 산과 숲을 누볐던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숱한 고민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카메라와 사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비로소 명확해졌다. 이젠 장비에 대한 욕심과 불필요한 관념들을 버리고 더 단순하지만 심도 있게, 사진과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겠노라 결심해 본다. 그렇게 나의 사진 생활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 작지만 든든한 새 카메라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