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일 아침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핸드드립으로 두 잔의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아내에게 제법 고급스러운 핸드드립 세트를 선물받은 날로부터 3년 넘도록 지키고 있는 루틴이다. 물을 끓이고, 도구를 준비하고, 컵을 데우고, 원두를 갈아 담고 천천히 내려서 두 잔의 커피를 만드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어오게 된 이유가 있다. 바로 연륜이다. 나이가 들수록 일상의 루틴이 중요한 이유는 반복되면서 쌓이는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게 생활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동 머신의 버튼 한 번으로 편리하게 내려 먹거나, 매일 아침 커피숍에 들러 테이크아웃을 하는 것이 보다 쉽고 편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에는 과정과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매일 수없이 반복하더라도 행위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나 점진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목적에 맞춰진 효율적 행동 패턴에 길들여지면 쉽게 무료해지며 창의적인 일상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매일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루틴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을 제법 살아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엄청난 반복을 통한 능숙함으로 관념으로부터 해방되며 여기서 느낄 수 있는 평온함과 여유로움은 단편적인 경험으로는 얻을 수 없다. 간혹, 징크스와 연관 지어 부정적인 행동 패턴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잘못된 강박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대다수의 경우 규칙적인 일상은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먼저 할지 고민하는 하루보다 언제나처럼 커피를 내리며 그 향과 맛을 음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좀 더 기분좋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3년을 넘게 매일 커피를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커피의 향과 맛은 조금씩 다르다. 단순한 과정의 반복임에도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날의 기온, 원두의 로스팅 날짜, 나의 솜씨 등이 얽히고설켜 그날의 커피를 만들어낸다. 난 매일의 커피 맛을 아내의 첫 모금을 통해 수집한다. 어떤 때는 눈을 지그시 감고 옅은 미소를 띠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무표정으로 몇 모금을 들이켠 뒤 조용히 잔을 내려놓기도 한다. 난 그걸 지켜보는 게 좋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커피의 맛과 아내의 표정을 통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내 일상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