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강천섬 : 잃어버린 가을의 낭만을 찾아서

가을의 강천섬은 아름다운 은행나무 길과 더불어 계절의 낭만을 느끼기 좋기에 추천하는 명소이다. 여유로운 오후에 찾은 그곳의 풍경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Start

강천섬은 우리 가족이 즐겨 찾는 동네 명소 중 한 곳이다. 집과 멀리 있지 않아 들르기 부담스럽지 않고 인공적인 시설물이 적어 온전히 자연을 즐기기 좋기 때문이다. 특히 햇살 좋고 따뜻한 봄과 가을에는 드넓은 잔디 광장 주변으로 무수하게 자리 잡은 은행나무 그늘 사이에 돗자리를 펴놓고 누워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정도다. 보통은 아이와 함께 가기 때문에 도시락과 간식, 놀이를 위한 장비들을 모두 챙겨가곤 했지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오랜만에 아내와 둘만의 시간을 보냈던 그 가을날의 강천섬은 오래전 연애 시절처럼 몸도 마음도 가볍게 다녀올 수 있었다.

가을 오후에 다시 찾은 강천섬은 어느새 진득한 계절 색의 옷으로 바꿔 입고 있었다.

가을의 강천섬은 전국적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손꼽히는 단풍 명소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잔디광장 주변으로 길게 뻗은 은행나무 길은 단풍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때문에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의 주말은 이를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다행히 우리가 방문한 평일 오후에는 비교적 한적한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단풍 명소라 한들 떨어지는 단풍잎의 수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은 찾기가 꺼려진다. 가을이 담고 있는 여유로운 느낌을 온전히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평일에 이런 명소를 한가로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전원 생활의 특권중 하나 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11월의 강천섬 은행나무 길은 온통 노랗게 물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늦더위가 기승이었던 올해는 유독 단풍이 늦게 들어 안 그래도 짧은 가을이 더 줄어든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따스한 오후의 가을 햇살이 가득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은행나무는 이미 많은 잎을 떨구고 있었다. 하지만 무수한 은행잎으로 인해 노랗게 물든 길은 아름다웠고 아내와 발걸음을 맞춰 걸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가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종종걸음으로 아이를 따라다니던 엄마와 아빠는 그날은 없었다. 육아를 전담하던 아내는 잠시였지만 모처럼의 자유로움을 느끼는 듯했고 온전히 산책을 즐기는 아내의 환한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안쓰러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은행나무 길을 걸으면서 주변으로 사진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피크닉을 하며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다. 복잡한 도심에서의 삭막함과 피곤에 찌든 표정은 이곳에서는 볼 수 없었다. 계절이 주는 행복감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우린 왜 대부분의 날에는 이런 행복을 놓치면서 사는 걸까.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육아에 지친 아내가 그러하고, 온갖 스트레스에 찌들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나도 그러했다. 한 시간을 족히 걷는 내내 나와 아내, 그리고 그 섬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발걸음에서 일상의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강천섬의 은행나무 길을 산책하며 행복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

어린 시절 가을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계절이 아니었다. 매년 찾아오기도 하고 가을이라고 해서 딱히 내 일상에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을만 되면 단풍 명소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 건지 어느새 그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한시적 아련함을 공감할 수 있는 듯하다. 지나가는 세월만큼 빠른 건 없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유난히도 짧아지고 있는 가을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쏜살같이 지나가버린 자신의 청춘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처럼.

가을에 큰 감흥이 없던 나도 언젠가부터는 그 풍경을 담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그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에는 나누기 힘든 대화의 주제들도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좀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딸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화목한 가정을 위해서는 이런 시간도 가끔 필요하다. 특히나 요즘에는 각자의 이름보다 아빠, 엄마로 불리는 날들이 훨씬 더 많았기에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대화를 이어 나갔던 그 시간은 가을의 강천섬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 사이에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은 같았다. 다음에는 딸과 함께 다시 오자고.

유난히도 맑았던 하늘은 진득하게 물들고 있는 나무들의 가장 이상적인 캔버스가 되어 주고 있었다.

모처럼의 데이트 같은 시간은 어느새 끝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드문 한적한 길이면 좋았겠다 싶었지만 저마다 가을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그 사람들 또한 가을의 한 풍경처럼 느껴졌다. 저만치에서 카메라를 세워놓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젊은 연인들을 보며 아마 나와 아내는 연애 시절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가을은 아름답고 황홀한 계절이지만 무엇보다 낭만적인 것은 그 계절을 함께 할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강천섬의 은행나무 길과 어우러져 가을의 낭만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또한 아름다운 풍경으로 느껴졌다.

이제 며칠 후면 이 섬의 나무는 모든 잎을 떨구고 새로운 계절을 맞을 준비를 할 것이다. 유난히도 짧은 계절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끝이 있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게 내년에도 다시 찾아 오자는 약속과 더불어 나와 아내는 주차장으로 향하며 하얀 눈이 쌓여있는 강천섬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니 올겨울에도 꼭 다시 오자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강천섬은 우리에게 계절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온전히 전해주는 소중한 장소가 되었다. 만약 일상을 벗어나 온전히 그 계절을 느끼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그리고 함께할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은 찾아보기를 바란다. 우리의 강천섬이 당신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라기에.

깊어가는 가을, 여주 강천섬의 오후 편집 영상 (출처 : 로브웍스 ROVEWALKS 유튜브)

ROVEWORKS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1인 사업가이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생각을 전달하는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일 잘하는 일은 아무것도 안하기 입니다.

이 글은 어떠세요?

치악산 : 경이로운 여름산의 생명력

대자연의 생명력을 통해 산과 내가 동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대관령 양떼목장 : 가을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

드넓은 초원과 자유롭게 뛰노는 양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좋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