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핸드프린팅 티셔츠

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제작한 크리스마스 티셔츠.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디자인, 인쇄, 판매까지 직접 진행하여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던 첫 제품 제작기.
Start
  • Project : Illustration Hand Printing T-Shirts Christmas Edition
  • Category : Illustration, Print, Product
  • Date : 2012.11.26
  • Client : N/A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당연하게도 일거리가 없었다. 막막한 상태로 갈팡질팡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평소에 관심이 있던 제품 제작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자본금이 거의 없었기에 가내수공업으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 실크스크린을 생각해냈다.

시기적으로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티셔츠를 제작하면 좋을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일러스트를 직접 그린 뒤 실크스크린 판으로 제작하여 무지 티셔츠에 손으로 직접 인쇄하는 수작업이었다.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기에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대학 시절 이후로 그림과 담을 쌓아왔기에 굳은 손을 푸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제작 당시 수작업 제품임을 홍보하기 위해 작업했던 제작 과정 이미지

머릿속으로는 대략적인 과정을 그려놓긴 했지만 막상 해보려니 변수가 많았다. 첫 번째는 일러스트를 그려내는 일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꽤 오랜 시간 그림에서 손을 놓고 지냈기 때문에 원하는 느낌의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결국 현실과 타협하여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전달력이 좋은 라인 드로잉으로 두 개의 일러스트를 그려냈다.

두 번째는 인쇄 품질 문제였다. 대학 때 전시 포스터를 실크스크린으로 직접 인쇄해 보긴 했지만 티셔츠에 동일한 품질로 대량 인쇄를 수작업으로 해내는 것은 처음이라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더욱이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변수는 많은 손실률을 발생시켰다. 품질 기준에 맞지 않아 판매할 수 없는 제품은 지인의 선물용으로 따로 모아두었는데 그 수량이 연말 단체복으로 돌려 입어도 남을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판매할 수 있는 최소 수량을 확보한 뒤, 직접 제작한 온라인 쇼핑몰에 상품을 등록하고 판매를 개시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대외 홍보도 하지 않은 채 열어놓은 쇼핑몰에는 당연하게도 파리만 날렸다. 사업 경험이 전무한 시절에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는 쌓아놓은 재고를 바라보며 조급한 마음이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다행히 지인들의 입소문을 통해 조금씩 판매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뭐라도 해보겠다는 청년 사업가의 발버둥이 안쓰러워서 였는지는 몰라도 내가 만든 제품이 실제로 팔리는 경험은 놀랍고도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판매량이 늘다가 소개의 소개로 연결된 대기업의 사무팀에서 연말 모임에 입겠다며 대량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좌충우돌 첫 프로젝트는 큰 문제 없이 마무리되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매출이 높았지만 결산을 해보니 자재비와 인건비를 제하면 수익은 마이너스였다. 애초부터 수익률과 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팔아버린 탓이었다. 만약 내가 욕심이 커서 큰 매출을 기대하고 재고를 늘렸다면 한 번에 망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제품을 만들어냈다는 성취감으로 사업 초기의 스스로를 고양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록 수익은 나지 않았지만 나름의 성과를 가져다주었던 첫 프로젝트는 훗날 나에게도 큰 자산이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기획하고 모든 실무를 진행하며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던 사업의 본질은 회사 생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난 지금쯤 다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 차가 되었다. 아직도 작업실 한편에는 티셔츠에 인쇄했던 크리스마스 일러스트 액자가 자리 잡고 있다. 언젠가는 초심을 생각하며 다시 같은 제품을 만들어 기념으로 판매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티셔츠의 첫 판매가 이루어졌을 때 느꼈던 환희와 흥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만들 티셔츠는 연륜이 쌓인 만큼 더 멋지게 만들어 수요 없는 공급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말이다.

ROVEWORKS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1인 사업가이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생각을 전달하는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일 잘하는 일은 아무것도 안하기 입니다.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이 글은 어떠세요?

나의 아버지. (2014)

나의 아버지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

겨울, 소백산. 그리고 등산에 대하여

산을 오르는 고통보다 인생의 고됨이 더 크게 느껴질 무렵 단행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