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나의 카메라 연대기 #1)에 이어, 사진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취미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 나는 더 다양한 카메라를 접하게 되었고 그만큼 사진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찍는 것’에서 벗어나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고민의 결과는 자연스럽게 장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번 편에서는 그렇게 사진이 일상이 되고, 나만의 시선과 취향이 카메라에 반영되기 시작한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사진가는 왜 빨간딱지에 끌리는가 : Leica D-LUX7

Leica D-LUX7
2019년에 출시된 디지털 카메라인 이 모델은 1,400만 화소의 포서드(4/3) 센서를 탑재하고, 라이카 특유의 감성을 담은 컴팩트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라이카 라인업 중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동급 사양의 타사 모델에 비해 가격이 높은 편으로, 순수한 성능보다는 브랜드 가치와 디자인에 가치를 두는 사용자들에게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 받았다.
출시가 : 170만원 대 / 보유기간 : 약 1년
라이카를 가장 저렴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D-LUX 7은, 사실 파나소닉과의 협업을 통해 일본에서 생산된 파생 모델이다 보니, 이 카메라를 온전히 ‘라이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긴 조금 애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 카메라를 선택하는 이유는 결국 라이카라는 브랜드가 지닌 상징성과 철학 때문일 것이다.
사진에 대한 진정성을 담고 있는 라이카 특유의 브랜드 철학과, 그에 어울리는 세련된 디자인은 이 카메라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일상 속에서 늘 가지고 다니고 싶은 매력적인 ‘물건’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더 자주 카메라를 꺼내 들게 되었고, 그렇게 기록된 일상은 어쩐지 더 멋져 보였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빨간 딱지’의 위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M이나 Q 같은 플래그십 모델을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라이카라는 브랜드를 직접 써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카메라는 내게 충분히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신생아 육아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카메라를 꺼내 들 여유조차 없어졌고,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건 카메라가 아닌 스마트폰이었다. 그렇게 이 카메라도 결국 내 일상의 배경으로 물러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아이와 사진, 그리고 후지필름 : Fujifilm X-E4

Fujifilm X-E4
2021년 후지필름에서 출시한 중급기 미러리스 카메라로, 2,700만 화소의 APS-C 크롭 센서와 컴팩트한 크기를 갖춰 뛰어난 성능과 휴대성을 모두 갖췄다. 필름 시뮬레이션 기능과 클래식한 디자인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한때 품귀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높은 수요를 보이기도 했다.
출시가 : 100만원 대 / 보유기간 : 약 1년
육아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사진과 카메라는 더 이상 ‘취미’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점점 강박적인 행위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의 순간을 남기고 싶은 아빠의 욕심은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도저히 만족되지 않았고, 결국 다시 카메라를 들이게 되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후지필름의 X-E4였다.
컴팩트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자사의 플래그십 모델과 동일한 사진 품질을 제공하는 이 카메라는 다시 카메라를 들이길 잘했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특히 후지필름의 전매특허인 필름 시뮬레이션 기능은 후보정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색감을 구현해줬다. 바쁜 육아 속에서 후보정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은, 매일을 전쟁처럼 보내는 아빠에게는 정말 큰 장점이었다.
아기의 백일, 그리고 첫 돌 기념사진도 이 카메라로 촬영했다. 1년 남짓 함께했던 이 X-E4는 나에게 일상과 아이의 성장기를 만족스럽게 기록할 수 있는 소중한 도구였고, 결과적으로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사진을 찍게 한 다음 카메라를 만날 수 있게 해준 든든한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오롯이 사진에 집중하다 : Fujifilm X-T5

Fujifilm X-T5
2022년에 출시된 후지필름의 상급기 미러리스 카메라로, ‘사진에 오롯이 집중하다’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4,020만 화소의 고화질 센서와 뛰어난 기계적 성능을 갖췄다. 전문가급의 사진 품질은 물론, 필름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클래식한 디자인 덕분에 출시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사진 애호가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카메라를 연상시키는 클래식한 디자인 덕분에 현재까지도 많은 사진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카메라다.
출시가 : 230만원 대 / 보유기간 : 약 2년
X-E4를 만족스럽게 사용하던 중, 후지필름의 상급기 신제품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출시와 동시에 구매하게 된 카메라가 바로 X-T5였다. X-E4 역시 훌륭한 카메라였지만, 사진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상위 기종에 대한 욕구로 이어졌고, 그렇게 선택한 X-T5는 지금까지 거쳐 온 수많은 카메라 중 가장 만족스러운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사진 품질은 말할 것도 없고, 카메라 조작 시 느껴지는 기계적 완성도는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한층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초광각부터 망원까지 다양한 렌즈들과 함께 사용하며 광학적 경험도 풍부하게 쌓을 수 있었고, 그런 만족감을 바탕으로 한여름의 등산길에도 이 카메라를 꼭 챙겨 갈 만큼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2년간 자연, 여행, 가족, 그리고 일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을 담으며 늘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던 카메라였다. 다만, 그 시기에 영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고민 끝에 결국 다른 기종으로 교체하게 되었지만, 만약 후속 모델이 출시된다면 큰 고민 없이 다시 들이고 싶은, 나의 인생 카메라다.












영상으로의 외도 : Panasonic Lumix S5 ii

Panasonic Lumix S5 ii
2023년 파나소닉에서 출시한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로, 영상 촬영에 특화된 바디와 뛰어난 손떨림 방지 기능, 전문가급 영상 기능을 갖췄다.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로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라이카와의 기술 협력을 통해 구현된 뛰어난 색감 덕분에 사진 품질 또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시가 : 230만원 대 / 보유기간 : 약 3개월
그간 나의 카메라 선택 기준을 떠올려보면, 파나소닉의 카메라는 다소 뜬금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영상 특화 카메라를 들이게 된 계기는 유튜브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영상 품질에 대한 욕심, 그리고 좋은 장비가 있어야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다소 장비 의존적인 발상이 그 선택을 이끌었다.
물론 Lumix S5 II는 훌륭한 카메라임에 틀림없다. 풀프레임 센서를 탑재해 사진 화질이 뛰어나고, 다양한 영상 관련 기능은 물론, 짐벌을 방불케하는 강력한 흔들림 보정 기능 덕분에 영상 품질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나에게는 어딘가 과분한 장비였다. 크고 무거운 바디는 오히려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제약이 되기도 했다.
결국, 불과 석 달 남짓 사용했던 이 카메라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울림은 장비란 결국 창작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자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카메라는 나에게 또 하나의 시행착오이자, 다음에 더 나에게 맞는 ‘최적의 카메라’를 선택하게 해줄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결국, 기록의 본질 : iPhone 16 Pro

Apple iPhone 16 Pro
2023년 출시된 애플의 최신 스마트폰 모델인 iPhone 16 Pro는, 사진과 영상 촬영 성능을 크게 향상시킨 카메라 시스템을 탑재했다. 뛰어난 센서와 렌즈 조합으로 균형 잡힌 화질을 제공하며, 다양한 촬영 모드와 고급 영상 기능을 지원해 전문 장비에 버금가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항상 휴대 가능한 장점 덕분에 일상 기록과 창작에 최적화된 카메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출시가 : 180만원 대(512GB) / 보유기간 : 보유중
아이폰을 15년 넘게 사용해왔지만, 그 안에 붙어 있는 작은 카메라는 어디까지나 일상 기록용일 뿐, 전문적인 촬영 장비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구매한 ‘iPhone 16 Pro’는 그런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기대 이상으로 뛰어난 카메라 성능 때문이었다. 사진과 영상 모두에서 균형 잡힌 결과물을 보여주며, 어떤 상황에서는 오히려 전문 장비를 능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일상적으로 늘 가지고 다니는 장비임에도 창작과 기록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나는 이 최신 아이폰을 본격적인 카메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기존에 가지고 있던 카메라와 관련 장비들을 모두 처분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새로운 카메라에 대한 관심도 접어두기로 결심했다.
다소 급진적인 결정일 수 있지만, 아이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으면서 창작과 기록의 과정이 놀라울 만큼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스마트폰 카메라가 발전했다고 해도, 전문 장비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활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럽고,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기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카메라보다 훨씬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
이렇게 적고 보니, 그간 유목민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많은 카메라를 거쳐 온 시간이 떠오른다. 더 잘 찍고 싶은 욕구는 어느새 장비에 대한 집착으로 변했고, 그로 인해 사진의 본질에서 멀어졌던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조금은 씁쓸하다.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조차 결국 나에게 맞는 카메라를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였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의미 있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가는 결국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게 될 거면서 왜 그렇게 비싼 장비들을 사고 팔며 헛수고를 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카메라들을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가 일상의 중요한 의미가 되기도 하니까. 내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산에 올랐던 이유도 그와 같았다. 뷰파인더 너머로 바라본 풍경, 셔터를 누르는 순간 손끝에 전해지던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감각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카메라가 제공하는 그런 경험적 측면은 아무리 뛰어난 스마트폰이 등장해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카메라는 사진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에 정해진 기준은 없다. 다만 여러 카메라를 경험한 내 기준에서 크게 와닿았던 점은 결국 인생의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은 카메라가 아닌 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든 사진을 찍는 행위를 게을리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