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나를 돌아보며 글을 쓰다 보면,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아왔다는 점이다. 이제 4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아마 남들보다 성장이 늦은 철부지이거나, 살아오며 자아를 재정립해야 할 계기가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는 두 가지 모두 어느 정도 해당되는 것 같다.
특히 올 한 해는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유독 많았고, 그로 인해 나 또한 환경적·심리적으로 적지 않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타인에 비해 성장이 더디다는 사실을, 어쩌면 전형적이지 않고 미래 지향적일 수 있다는 쪽으로 나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매년 의식적으로 써 내려가는 글이지만, 내년에는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 한 해 겪은 일들과 그에 따라 달라진 마음가짐을, 올해 남겼던 글들과 함께 되짚어보며 회고해 보고자 한다.
둘째의 탄생과 가족의 재구성
올해 가장 큰 변화의 시작은 연초에 아내의 갑작스러운 둘째 임신 소식을 접하면서였다. 첫째 아이가 여섯 살이 되며 육아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던 터라, 아내와 내가 이제야 조금씩 시작해 보자고 세웠던 자기 계발 계획은 한순간에 무의미해졌다. 아내는 이 일로 매우 큰 상실감과 우울함을 토로했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자식을 가진 부모는 무조건 행복할 것이다’라는 나의 강박적인 명제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관련 글 : 임신과 출산 : 둘째 아이 탄생에 즈음하여)
나 또한 우리 가족의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앞으로 바뀌어야 할 생활 방식에 대비하며 아끼던 차를 팔게 되었고(관련 글 : 나의 자동차 이야기 #2 : 랭글러를 떠나 보내며), 지난 3년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켜왔던 커피 내려 마시기 같은 여유로운 아침 루틴 역시(관련 글 : The Coffee Time : 매일 아침 커피를 직접 내리는 이유) 둘째의 탄생과 함께 포기해야 했다. 40대에 접어들며 새로 갖게 된 취미였던 등산도 올해에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삶. 부모가 된다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세월의 흐름과 맞물려 불현듯 슬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다행히 둘째가 곧 백일을 앞둔 지금, 우리 가족은 다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우여곡절이 많은 한 해였지만, 변화된 삶에 적응하며 나름의 의미를 발견해가고 있다. 매일 아침 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을 느낀다.
다만, 누군가 나에게 ‘아이가 있는 삶은 어떤가요?’라고 조언을 구한다면, 예전처럼 ‘무조건 행복하다. 아이를 갖는 삶을 추천한다’는 식의 오지랖은 앞으로 부리지 않으려 한다.

AI가 나의 삶을 잠식하고 있다
올해는 AI가 가져온 변화가 유독 컸다. 특히 나의 업무 분야의 많은 부분이 빠르게 AI로 대체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업무에 활용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부분 경계해야 했다. (관련 글 : AI 시대를 사는 평범한 창작자의 고찰)
나는 AI를 삶에 들이는 데 대체로 보수적인 입장이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2026년, AI는 우리 삶에 더 빠르게 스며들며 충격적이고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나의 업무 분야에 한해서는 이미 그러하다. 지방 변두리의 시골에서 재택근무로 혼자 일할 수 있는 환경 역시 AI를 활용한 업무 방식의 개선 덕분이다.
물론 일 자체는 많이 줄었지만, 그만큼 근무 시간도 단축되어 오히려 삶의 질을 고민할 여유가 생겼다. 이렇듯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기에, 먹고사는 문제에서 AI를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지금의 결론이다.
다만 내가 우려하는 지점은, AI가 가져오는 변화가 과연 우리의 ‘일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올 한 해 AI 발전의 핵심은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이런 것까지 가능해?’라는 반응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똑똑한 기계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지만, 그 가능성에 매몰된 나머지 창작의 본질을 잃어가는 부작용도 분명 존재했다. 타인의 창작물을 서슴없이 베끼거나, 가짜 뉴스를 생성하고, 공해에 가까운 자극적인 콘텐츠를 무분별하게 따라 하고 소비하는 사례가 난무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시류에 휘말릴 경우 AI 역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거나 범죄에 악용될 위험성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것이 내가 내년에도 AI를 경계하며 보수적으로 도입하려는 이유다.
여담이지만, 내가 우리 부모님 세대였다면 아마도 AI로부터 오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거부했을 것이다. 삶의 절반 이상을 그 기계의 도움 없이 살아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레 훅 들어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듯한 존재가 꽤나 괘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불편함은 곧 불행이 아니다. 때로는 필요한 정보를 1초 만에 찾아주는 기계보다, 도서관에 가서 관련 책을 직접 빌려 읽는 행위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태어난 미래 세대를 키워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렇기에 막무가내로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년에는 AI의 발전 방향이 ‘가능성’과 ‘효율’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삶’과 ‘행복’에도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사회적 이슈로 깨닫는 인류애의 중요성
올 한 해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보았던 이슈 중 하나는 ‘쿠팡의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건’이었다. 작년 말, 나는 집 근처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다. (관련 글 : 쿠팡 물류센터 야간 근무 경험기) 본업의 불경기와 더불어 새로운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판단해 보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 현장에서 경험한 비인간적인 시스템과 기업 문화로 인해 약 20일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나와 아내는 쿠팡을 탈퇴했고, 현재까지 이용하지 않고 있다. 쿠팡에서 일하며 내가 가장 큰 거부감을 느꼈던 점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세세한 부분을 모두 나열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쿠팡은 노동자와 고객을 목적 달성을 위한 대상으로만 본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노동자와 고객의 중간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너넨 어차피 우리 없으면 돈도 못 벌고, 편하게 쇼핑도 못 하잖아.’라는 태도가 적나라하게 느껴졌고, 그 점이 매우 불쾌했다.
그간 택배가 조금 늦게 도착하면 불만을 토로하거나, 써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해버리면 되지’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스스로가 다소 한심하고 천박하게 느껴졌다. 당일 배송을 위해 몸을 갈아 넣는 노동자들과, 무분별한 반품으로 발생하는 무수한 쓰레기들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쿠팡은 지금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사람마저 하나의 부품처럼 끼워 넣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 기업 운영 방식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노동자 사망 사건이나 개인정보 유출 따위가 과연 크게 신경이나 쓰였을까 싶다.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쿠팡의 경영진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내가 예상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아마 시간이 조금 지나면 쿠팡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영업을 지속할 것이고, 이슈 또한 잠잠해질 것이라 예상한다. 다만, 그런 천민자본주의에 잠식되어 ‘누가 억지로 시킨 일도 아니고, 어차피 돈 벌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일이잖아.’라거나 ‘혁신에는 희생이 따른다. 덕분에 편하게 쇼핑하고 삶이 더 나아졌잖아.’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이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의 ‘인류애’를 위해서.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다.

그래서, 결국 너는 내년에 어떻게 살건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듯 여러 가지 생각을 구구절절 늘어놓았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매번 갈팡질팡하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스스로의 기준을 무너뜨리며 살 때도 많았다. 결국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도달한 결론은,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고 내년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쓰는 글은 누군가에게 조언하거나 무엇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 가늠하고 파악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남긴 글과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크게 괘념치 않기를 바란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니까.
그리고 올해는 조금 더 담백하게 살겠노라 다짐해 본다. 쓸데없는 말은 줄이고, 꼭 해야 할 행동에 집중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수록 말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특히 아이를 키우며, 내가 하는 말이 아이에게는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걸 느꼈을 때, 내뱉는 말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통감하게 된다.
대신 이 웹사이트에서 나의 생각을 두서없이 써 내려가는 일은 내년에도 더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생각은 언제나 행동으로 직결되지는 않기에, 이렇게 공개적인 공간에 남겨둔 글들이 때때로 엇나가는 나 자신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초심의 회초리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이렇다 할 대외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지금의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이기도 하다.
미루고 미뤄왔던 ‘상점’도 올해에는 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내가 가진 생각과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솔깃해할 만한 상품을 만들어 소소하게 판매해 볼 생각이다. 전망은 알 수 없지만, 이미 여러 번 망해본 경험이 있어 나름의 노하우도 쌓였기에, 잘되지 않더라도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 예상한다.
새해 다짐과는 다르게 쓸데없는 말을 꽤 많이 늘어놓았다. 하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누군가를 붙잡고 앉아 이런 말들을 했다면, 아마 그 사람은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반면 이런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공간이라면, 적어도 ‘누가 보라고 등 떠민 건 아니잖아!’라고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말과 생각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철없는 중년으로서 이런 대나무숲 같은 공간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다행스럽다. 다만 가끔 이곳을 찾는 지인들이 꽤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적어도 현실의 나와 괴리가 지나치게 큰 글은 지양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그들을 포함해, 이 별것 없는 공간에 한 번이라도 들러 글을 읽어주는 수고를 해주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내년에는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모두는 아니더라도, 제법 가까이 이룰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마지막으로, 많이 부족한 나를 늘 남편으로서 존중하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올 한 해도 고생 많았고, 내년에도 함께 행복한 날들을 만들어가기를 바라며.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부록 : 2025년의 기록
가장 좋았던 책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뛰어난 소설가로서 칭송받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꾸준히 쓰는 이유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다. 소설과는 다르게 인간적이면서도 자기통찰적인 글을 통해 글쓰기를 이제 막 시작한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미 명예와 부를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의 생각과 노하우를 가감 없이 내보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일본 공교육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밝힌 ‘학교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곧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켜야 하는 학무모 입장에서 매우 공감했다. 그간 지녀왔던 소설가로서의 신비감은 다소 떨어졌을지라도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선물같은 책이었다.
가장 좋았던 영화 :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일본 영화를 특별히 편애하는 편은 아니지만, 인상 깊게 본 영화들이 일본 영화인 경우가 많다. 아마도 잔잔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특유의 감성이 나의 취향과 맞아서 그런 게 아닐까. 올해는 많은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여유시간이 많이 줄어든 탓에 제법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라 그나마 한편을 건진 것 같았다. 감상평은 올해 초 남긴 후기 글(일상이 영감이 되는 영화 : 퍼펙트 데이즈)로 갈음한다.
가장 좋았던 여행 : 부산 – 대마도 여행
올해 여름의 막바지에 곧 아빠가 될 예정이었던 지인과 함께 무작정 떠난 2박 3일의 여행이었다. 공교롭게도 둘의 아이 출산 시기가 비슷하여 여행 내내 많은 것들을 공감할 수 있었다. 고된 육아에 지쳐가는 요즘, 아직도 이 기억을 통해 적잖이 위로를 받곤 한다. (관련 글 : 40대 유부남들의 일탈 : 부산-대마도 여행기 1)
가장 좋았던 경험 : 나의 어린 시절 동네 찾아가기
우연한 기회로 나의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30년 만에 찾아가게 되면서 희미했던 기억과 추억을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었다. (관련 글 : 신월동, 30년 만에 다시 찾은 그 시절의 발자취)
가장 슬펐던 경험 : 반려견과의 이별
올해 말, 13년 동안 키웠던 반려견 엠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삶이 한창 힘겨울 때 입양하여 온갖 고생을 함께 했던 날들과 결국,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본가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이 겹쳐 회한이 몰려왔다. 나의 유일한 반려견, 엠제이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관련 글 :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견, 엠제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