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연휴를 앞둔 여름의 끝자락에 BMW에서 신차 구매고객 대상으로 제공하는 전기차 시승 프로그램(BEV Membership)을 통해 미니 쿠퍼 전기차를 시승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재택근무와 오랜 칩거 생활로 딱히 외출할 일도 없었음에도 공짜로 일주일이나 차를 쓸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좋은 기회이니 아이 둘은 자신에게 맡겨두고 시승 일정 동안 여행을 다녀오던지 시승차와 함께 자유를 만끽하고 오라는 꿈같은 배려를 해 준 덕에 모처럼 자유로운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다. 최근에는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닌 다음에야 집에만 있었던 나였지만 젊은 시절 나의 낭만이었던 미니 쿠퍼를 다시 만나게 되니 일주일 만이지만 작은 일탈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동안 전기차와는 큰 인연이 없었다. 저렴한 유지비가 매력적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연기관 대비 짧은 주행거리, 회생제동 등과 같은 이질적인 주행감각 등으로 쉽사리 선택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다만, 언젠가는 전기차를 꼭 한번 운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니 쿠퍼의 전기차 모델이 나의 첫 전기차 운전 경험이 된 것이다. 처음 차를 받았을 때는 어색함이 느껴졌지만 운전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었기에 크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평소에도 엑셀레이터를 예민하게 조작하는 편이라 악명 높았던 전기차의 회생제동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미니 쿠퍼 특유의 작은 차체와 짧은 휠베이스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고카트 필링에 전기차의 정숙하고 민첩한 반응이 더해져 운전의 재미는 극대화되었다.











그렇게 하루 만에 시승차의 적응을 끝내고 둘째 날에는 느지막이 서울로 드라이빙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에 도착지를 ‘삼청동 정독 도서관’으로 찍고 출발했다. 목적 없이 서울에 한 곳을 가야 한다면 늘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삼청동이었다. 나의 젊은 시절의 추억을 적잖이 간직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인생의 쓴맛을 알게 해준 나의 첫 직장도 그곳에 있었다. 약 20여 년 전, 인턴 월급으로는 삼청동 주변의 비싼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어려워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나마 저렴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던 라면 집 ‘라땡’도 그때 처음 알게 되어 지금까지도 종종 찾고 있는데, 자매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 두 분이 여전히 빠릿빠릿하게 일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 ‘나이는 나만 먹었나’하는 생각에 잠시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아무튼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짬뽕 라면’은 매운맛 애호가들에게는 반드시 먹어 봐야 하는 맛집으로 알려졌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소화도 시킬 겸, 삼청동 거리를 몇 바퀴 걸으며 사진 몇 장을 찍으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모처럼 나온 거라 이대로 집으로 향하기엔 아쉬움이 커서 드라이브도 더 하고 야경도 감상할 겸 근처에 있는 남산에 들러보기로 했다. ‘남산 도서관’을 목적지로 찍고 와인딩 코스로도 유명했던 소월길을 따라 천천히 목적지로 향했다. 창문을 열고 달리니 여름 끝자락의 선선한 저녁 공기와 멋진 야경이 차 안으로 스며들어, 드라이브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었다. 목적 없이 운전 그 자체를 오롯이 즐겨본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라 가슴속에 봉인되어 있던 자유와 설렘이 다시금 깨어나는 듯했다. 한적한 도심에서 소음과 매연 없이 거리의 정취를 해치지 않으며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는 전기차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산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서울 N 타워로 올라가는 길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면 힘들지 않게 바로 올라갈 수 있지만, 밤공기도 선선하고 서울의 야경을 감상하면서 올라갈 수 있는 계단길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것도 운동 삼아 좋을 것 같았다. 평일 밤인데도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진 인파에 엄두도 나지 않았던 것도 선택의 이유였다. 예전 같지 않은 체력에 숨이 차오를 때쯤 정상에 이르러 주변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서울의 랜드마크와 야경을 즐기고 있었다. 재미있었던 건, 내국인보다 외국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시골 살이 중년 아저씨에게는 꽤나 이색적인 광경으로 관광 도시로서 서울의 달라진 위상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직접 올라가서 보니 남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야경과 멋진 조명에 둘러싸여 있는 서울 N 타워의 위용이 관광객들을 끌어들일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서울에서의 하루는 만족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시승 넷째 날에는 조금 장거리 여행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강원도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보고 다시 돌아오는 왕복 350km에 달하는 장거리 코스였다. 전기차를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짧은 주행거리와 충전 인프라 부족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나 또한 그중 한 사람으로서 모처럼의 전기차 시승 기회를 얻은 김에 직접 경험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겸사겸사 올해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바다 구경도 할 겸 말이다. 미니 쿠퍼 전기차의 공인 주행거리는 약 300km로 앞서 말한 코스를 다녀오려면 무조건 한 번 이상의 충전이 필요했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고속 정속 주행 시, 예상치보다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주행 가능 거리를 보고 있으니 전기차 운용 경험이 적은 나로서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결국 가는 도중 휴게소에 들러 급속 충전을 해야 했고, 여유롭게 출발했지만 예상치 못한 충전 시간으로 일출 예상 시간에 가까스로 도착하면서 하마터면 제대로 된 해돋이를 보지 못할 뻔했다. 여러모로 편리하고 경제적인 장점을 가진 전기차지만 장거리에서의 짧은 주행거리와 충전 스트레스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평일 새벽에 도착한 정동진의 해변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구름이 좀 끼어있어 완벽한 해돋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와 이를 밀어내는 해의 불그레한 기운이 뒤섞여 만든 하늘의 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거기에 조용히 넘실거리는 파도의 바다가 더해져 만든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오랜만의 바다여서 그랬는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황홀함에 난 한동안 넋을 잃고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다 모래사장에 자리 잡고 쉬고 있는 갈매기 떼는 가까이 가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듯한 모습은 지금의 이곳이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해변을 따라 모래사장을 한 바퀴 돌고 난 다음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다행히도 정동진 무료 주차장에는 전기차 충전소가 잘 갖춰져 있어 돌아가는 길에 따로 휴게소에 들어 충전할 필요는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오전 9시가 좀 넘은 시각, 아내는 딸아이의 유치원 등원을 나서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긴 했지만 바다를 다녀오고도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인 걸 보니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잠을 줄이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승차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이렇게 쉴 틈 없이 끌고 다닌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긴 이동거리와 운전시간을 기록했다. 만약 고유가 시대에 내연기관 차였다면 이 정도까지 적극적으로 돌아다녔을까 싶을 정도로 전기차는 뛰어난 접근성과 경제성을 보여주었다. 미니 쿠퍼 전기차를 일주일간 타본 경험으로 종합적인 결론은 패밀리카나 메인 자동차로는 부족하지만 1-2인용의 세컨드 자동차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고 날렵한 차체는 복잡한 도심을 누비기에 적합하며, 충전 인프라만 제대로 갖춰진 곳이라면 유지 보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동의 부담을 줄여 좀 더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 시대의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풍요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꿈같은 일주일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나름 정이 들었는지 시승차를 반납하면서 조금은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오랜 칩거 생활도 슬슬 청산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제 겨우 마흔 중반에 이르렀을 뿐인데 인생을 다 산 것 마냥 집안에서 신선놀음을 하기에 아직 난 너무 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록 일주일 뿐이었지만 가슴 한 구석에 숨어있었던 내 안의 열정과 설렘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도와준 미니 쿠퍼 전기차는 나의 일상에 큰 영감을 준 고마운 차로 기억될 것이다.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시승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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