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출산 이후로 여행은 우리 가족과는 아주 먼 이야기였다. 출산 직후 태어난 아이가 집으로 오는 순간부터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신없이 반복되는 날들속에 여행 같은 일상의 변주를 끼워 넣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육아를 돕고 있지만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던 나는 그렇다 하더라도, 첫째 때도 그랬지만 육아에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는 아내를 보면 큰 탈 없이 지나가는 평범한 하루가 그저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의외로 가족 여행에 대한 계획을 먼저 이야기한 건 놀랍게도 아내였다. 둘째 아이의 첫돌이 되던 시점에 아내는 일 년 동안 고생한 우리 가족 네 명 모두에게 나름의 격려와 포상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조심스럽게 여행을 제안했다. 제일 고생한 아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우리 가족 네 명의 첫 여행은 그렇게 성사되었다.

심사숙고한 결정으로 미뤄보자면 멋진 휴양지나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와 아내는 여행지에 대한 기대치나 바램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둘 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고, 첫째 아이도 아직 어려 여행의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집 밖을 나가 외박을 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여행의 기분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물론 둘째 아이도 이제 생후 일 년이니 장거리 여행을 데리고 가기에는 예민한 아내의 성격상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결정한 여행지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여행의 기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강원도 속초였다. 얼마 전, 일곱 살 둘째 아이가 바다가 보고 싶다고 지나가 듯 말한 것이 내내 신경이 쓰였었는지 아내는 바다를 실컷 볼 수 있는 곳으로 떠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둘째를 돌보느라 첫째 딸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지 못했던 지난 일 년을 회상하니 나 역시 미안한 마음이 컸었는데 이번 여행은 첫째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는 숙소로 예약하고 평일의 이른 아침에 강원도 속초로 출발했다. 도착 예상시간이 딱 점심시간 즈음이라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해야 했는데, 속초의 물회가 맛있다는 식당을 목적지로 설정했다. 주말에는 1시간 넘게 대기를 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아주 유명한 식당이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기다림 없이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나와 아내는 아무리 맛있고 유명한 식당이라도 기다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만약 대기 시간이 길었다면 근처 다른 식당을 찾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튼,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여행에서 식사의 비중을 크게 두지 않는 편이지만 이토록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게 되면, 나는 평소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미슐랭이니 블루리본이니 하는 유명한 식당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게 괜한 일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식당과 같은 건물을 쓰고 있는 1층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는 건물이라 커피를 주문하고 잠시 산책을 즐기기에도 괜찮은 곳이었다. 바다로 통하는 뒷마당에 꽤 그럴듯한 회전목마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어 그런지 카페 이름도 ‘Merry Go Round’였다. 가까워서 방문한 것치고는 주문했던 말차 라떼가 제법 맛있어 흐뭇해졌다. 차를 한잔하며 한적한 평일 오후에 따뜻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로를 잠시 걸으니 여행지에 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실감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물론 여행의 낭만을 즐기는 내내 나에 가슴 앞쪽에는 약 10kg에 육박하는 1년 생 아들이 키 링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이 아이에게 여행의 낭만까지는 못하더라도 평소 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탁 트인 바다와 짠 내 나는 공기 정도는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었을까. 적어도 모처럼의 가족 여행에서 힘들어하거나 칭얼대지 않고 함께해 주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간식거리도 사고 소화도 시킬 겸, 숙소 근처에 위치한 속초 중앙 시장으로 향했다. 이곳 또한 관광 명소이긴 하지만 재래시장의 정겨움과 복작거림이 남아 있어 아이와 함께 구경하며 돌아다니기 좋았다. 한참을 구경하다 보니 딸의 시선이 유독 한 곳에 몰린다. 내성적인 성격의 일곱 살 딸은 지금까지 무엇을 사달라고 졸라대거나 고집을 부린 적이 없다. 다만, 갖고 싶은 것을 발견했을 때는 말없이 오래 쳐다본다던가, 근처에서 발걸음이 느려진다던가 하는 무언의 제스처를 취한다. 자신의 욕구를 밖으로 내보이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의 소리 없는 아우성인 셈이다. 이 신호를 캐치하지 못하고 지나친다면 갑자기 뾰로통해진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무라게 될 수도 모를 일이다. 아이의 시선이 머문 것은 좋아하는 ‘시나모롤’ 캐릭터 모양이 찍혀져 있는 달고나였다. 평소 먹거리 통제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엄마도 모처럼의 여행에서 유난스럽게 구는 건 별로라고 생각했는지 의외로 쉽게 손에 쥐여 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런 아내와 달고나 하나에 해맑은 얼굴을 보여주는 딸, 여전히 내 가슴에 매달려 마냥 신난 한 살배기 아들을 번갈아 보며 이번 여행은 그들이 보여주는 표정으로 만족감을 얻는 시간이 될 거라 기대가 되었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했다. 해변이 바로 앞에 있고 키즈 카페와 사우나가 함께 있는 리조트였는데 도착하자마자 딸아이는 마치 천국에 온 것 마냥 들뜨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여행을 즐기지 않는 부모를 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자주 오지 않는 기회와 간절함으로 얻어진 행운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또한 그렇지 않을까하는 나름의 정당화를 해본다. 아무튼 일곱 살 딸에게는 선물 같은 여행이 더 특별하게 기억될 수 있도록 나도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입실 후 바로 키즈 카페로 향했다. 원래는 두 시간의 제한이 있는데 오늘은 평일이고 손님이 별로 없어 특별히 무제한이라며 선심 쓰듯 이야기하는 카운터 직원을 잠시 원망스럽게 쳐다본다. 이 직원은 아이가 없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 배려 덕분에 난 저녁 식사 전까지 빠져나올 구실 없이 딸의 놀이 동무가 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맞춘 놀이 시설에 몸을 구겨 넣으며 한참을 놀다가 허리 쪽 디스크가 이탈할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질 때쯤 밥 먹으러 가자는 아내의 구원의 목소리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와 사우나까지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지만 일곱 살 딸은 유독 아쉬워한다. 요즘엔 늦은 밤까지 놀고 싶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버릇처럼 말하던 아이가 여행까지 왔으니 오죽할까 싶어 둘이 해변 밤 산책을 나가자고 하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숙소 앞 해변에는 해변 산책로가 제법 잘 정비되어 있었고 아직 밤공기가 차갑지 않아 나가는 게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오기가 무섭게 아이는 바닷물 쪽으로 뛰어가더니 밀려오는 잔잔한 바닷물에 발끝을 겨우 맞추고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파도를 한참을 바라본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 평소의 딸에게서 볼 수 없는 신기한 광경이다. 그러다 되돌아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두운 모래사장을 총총 걸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니 문득 여행을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함께 걸으며 평소에는 실소했던 아빠의 아무 말 농담에도 딸은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길었던 여행 첫날을 마무리했다.



이튿날, 새벽부터 내리는 비 덕분에 차분하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젖은 해변의 풍경을 잠시 즐기고 싶었으나 재충전을 마친 아이 둘은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침대와 바닥을 오가며 한참을 뒹군 뒤에야 나갈 채비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오후에는 날씨가 개고 따뜻한 햇살이 반겨준 덕분에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놀 수 있었다. 키즈 카페보다 해변에서 노는 게 훨씬 즐겁다는 아이의 말에 한참을 놀고도 ‘이제 가자’는 말이 입 밖으로 쉬이 나오지 않는다. 며칠 전, 바다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다시 머릿속에 맴돈다. 그리고 젖은 모래에 반쯤 발을 묻어놓고 깔깔대는 아이를 저만치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렇지, 지금의 아이에게 난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램프의 지니 같은 존재다.’ 아이 덕분에 다시 비대해진 자존감으로 나 또한 활력 있는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정신없이 흘러가던 일상에서는 미처 몰랐던 가족의 유대감이었다. 짧은 2박 3일이었지만 함께 웃고 시간을 보내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특별한 순간을 나누고 공감했다. 아이들은 여행 내내 밝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줬고, 나와 아내도 그런 아이들을 보며 부모로서 큰 행복과 뿌듯함을 느꼈다. 이번 여행처럼 좋은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훗날 아이들이 꺼내 볼 추억 앨범에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 아이들의 미래에 오랫동안 기억될 아빠가 되고 싶기에, 나 또한 앞으로 조금 더 힘을 내 볼 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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